part 1 : 위로를 받으세요

 가족 독서 릴레이책을 선정할 때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는 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짧으면서도 여운을 주는 ‘시집’을 읽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하나의 소재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이 북돋아 오른다. 그리고 내 경험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 결말이 궁금한 소설은 자주 읽더라도,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시집을 통해 우리가 영감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가족 독서 릴레이를 통해 우리 가족의 깊은 생각을 들어볼 수 있다고 기대한다.

 

part 2 : 오래된 책에 손을 닿기까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나 낡고 허름하여 손을 대지 않은 적이 있는가?

가족 독서 릴레이책을 선정하기 위해 <책밭서점>을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상과 단절된 채 나만의 공간에 온 듯한 책 냄새를 풍긴다. 수십 년 세월을 겪은 책들을 보니, 내 방 서재에 있는 오래된 책들이 생각났다.

먼지가 많이 쌓이고 찢어진 페이지도 존재하는 책들은 ‘우리 가족’이라는 주인이 있으나,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상태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책밭서점에서의 발길을 돌리고 우리 집 서재에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를 다시 읽고 싶어 했다. 이 책이 집에 있는 줄도 몰랐던 나와 언니에게 새로운 감정을 줄 것으로 생각하여 이 시집을 선정했다.

 

part 3 :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는다

저작권 없는 무료 사진

 총 60여 편의 시가 담겨 있다. <소금인형>, <자작나무> 등 시의 분위기나 내용 표현에 따라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특히 <민들레> 시에서 이 구절은 참 마음에 든다. <민들레 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그냥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걱정 없이 떠다니고 싶다. 당시에 힘들었던 일들도 지나고 나면 참 별거 아닌 일이다. 물론 지금의 나라도,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다시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이 구절이 더 다가왔다. 너무 심각하게, 그렇다고 안일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보낼 수는 없을까.

 지금 힘든 일도 내일만 되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민들레> 시에 있는 구절처럼, 슬프면 그냥 엉엉 큰 소리로 울고, 강한 척 안 하고, 견디려 하지 않으면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민들레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시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을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part 4 : 언제나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두 번째 주자는 엄마다. 추석날 가족 다 같이 모였을 때 책을 드렸다. 엄마는 저녁에 혼자 방에서 시를 읽은 후 카카오톡 메신저로 느낀 점을 말해줬다.

카카오톡 캡쳐 사진 - 언론홍보학과 박선영

같은 공간에 있는데, 갑자기 SNS 메신저로 보내서 상황이 웃겼다. 하지만 이렇게 길게 보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엄마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란 시를 가장 마음에 와닿아 했다. 엄마의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에 다짐하게 만든 것 같다. 메신저의 내용을 읽으면서 한 번 더 시의 내용을 곱씹어 봤다.

나두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고 싶다" 엄마 카카오톡 메신저 )

이 문장을 읽는데 나를 키워온 23년 세월을 생각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엄마의 '현재'를 위해 이제는 나의 미래를 그려본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part 5 : 봄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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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주자는 언니다. 언니는 내 옆에서 노래를 들으며 시집을 천천히 읽더니, 대뜸 왜 이 시집으로 선정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왜 많은 작가 중에서 류시화 시인을 골랐는지, 나는 어떤 시가 가장 좋은지 물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관련된 상을 많이 받던 언니였기에, 이 과제의 취지를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내 대답을 듣고 나서 더욱 신중하게 시를 고르던 언니는 <봄비 속을 걷다>가 가장 와닿는다고 하였다

 생동감을 주는 봄비에 위안을 받으며, 시의 내용이 드라마같이 영상으로 그려진다고 말했다. 이 시는 봄비를 소생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고난을 이겨낸 후 삶에 대한 신념을 다시 가지는 회복을 전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언니는 나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었고, 내게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겨울이고, 춥고, 힘들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봄비가 찾아오면 괜찮아질 것이니 힘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내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봄비 속을 건다

봄비 속을 건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part 6 : 떠나갈 때 다 비우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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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주자는 아빠다. 아빠는 책을 받고 나서, 다른 시집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부탁을 드리자. 거실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정성껏 시를 읽었다. 그리고 <누구든 떠나갈 때> 시를 낭송했다.

" 떠날 때 다 비우고 가자

한 번 지나간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잊고 지나가자는 교훈을 얻게 된다." 

 아빠가 얻은 교훈은 나에게도 교훈이 된다. 신기한 건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지나간 것을 잊으려 하는 시를 선택했다. 비슷한 시를 고른 모습에 천생연분이란 말이 바로 나온다. 그리고 두 분이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인가도 생각했다.

 나는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항상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속상함과 기쁜 감정 모두 공유한다. 최근에 나의 지친 모습에 부모님께서 이 시를 선정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그런 생각을 곱씹을수록 나에게 힘이 되었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part 7 : 나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

 현재 해야 할 일 많아서 부담감이 크다. 이런 시기에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하면서 가족들의 한 줄 감상평이 나에게 따뜻한 한마디이자 큰 힘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23세 청년들에게 공통된 고민이자, 즉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그러니 수많은 걱정을 해봤자 어차피 결과만 남을 뿐, 걱정을 거듭할수록 힘들게 하는 건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처음 전학을 가고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 걱정을 했던 많은 시간. 며칠이 지나니 금방 새 친구들과 놀아 다니며 그런 걱정은 금세 잊어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매일 힘들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대학 성적을 맞춰도 면접에서 말을 제대로 못 해 끝나고 펑펑 울던 대입 준비 시절. 어느새 제주대학교에 적응하고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취업 준비도 몇 년이 지나면 하나의 경험이자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질 발자취들이다. 그러니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고, 다가올 봄비를 기다리며,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자.

 

 

<2020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4학년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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