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우를 돌보는 김하영씨

“아이들이 하루라도 즐겁게 살게 해주고 싶어요.”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대학교를 지나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길로 들어가다 보면 제주장애인 요양원 ‘행복한 쉼터’가 존재한다. 그 곳에서 우리 주위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한다.

처음에 그 곳에 들어서서 장애우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평상시에 보던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우리의 당혹감은 사라졌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반겨주며 환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자 따스한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들과 인사를 하며 그 곳의 분위기에 익숙해 질 즈음에 음악치료 선생님인 ‘김하영씨’를 만날 수 있었다.

10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봉사활동을 좋아했죠. 성악을 전공으로 하려고 했는데 봉사활동이 즐거워서 사회복지 쪽으로 가게 되었어요.” 이어 그녀는 “이 곳에는 대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왔어요. 학교를 다니다가 21살에 취직을 하였는데 사회복지사로서 부족함을 느껴 놀이 치료를 공부했어요. 직장에서 음악치료를 배울 수 있게 지원 해주어서 교육을 받고 통합프로그램담당으로 행복한 쉼터에서 프로그램 진행과 인권교육을 하고 있죠.”라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꺼리는 직업을 굳이 선택할 만큼 이 일의 매력이 뭘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제가 너무 즐겁다는 거에요. 저의 적성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장애인들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즐겁고요.”라며 우리의 의문점을 말끔히 풀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전쟁 같아요.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차요.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소극적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취업하고 저의 결혼식 때 처음 번 돈을 부주로 보내며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쓴 편지를 보고 ‘잘 키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울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그녀는 “이 일을 하며 보람찬 순간도 많지만 힘들 때도 있죠. 이 곳에서는 종사자의 인권을 지키기 어려워요. 장애우에게 뺨을 맞거나 욕을 듣는 경우도 있죠. 그리고 아이들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경우도 비일비재 해요. 몇 년을 함께 지내던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면 많이 힘들죠. 하지만 그때 좌절하기 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요.”라며 밝게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이 뚜렷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그녀는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인내를 배웠어요. 중증장애인에게 무언가를 원할 때는 3년에서 5년의 기다림이 필요해요. 단기간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재활치료를 꾸준히 해야 해요. 밥 먹는 것조차 긴 기다림이 필요하고요. 밥 먹기 전 신체마사지, 얼굴, 구강마사지 과정을 거치고 음식을 넣을 때에도 조심해야 해요. 원래 성격이 급했는데 이 곳에서 일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라며 장애우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배우는 것도 많다는 겸손한 말을 전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은 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우리의 질문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목소리가 한층 올라가서는 “한번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왔었는데 들어오자마자 우리 아이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말을 했었어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너무 나빠서 단호하게 돌아가시라고 하고 아이들에게 맞는 곳을 찾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오시라고 했었죠.”라며 그때의 기분을 생생히 전해 주었다.
이어 그녀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기게 하기 위해 시청 같이 사람이 많은 곳을 일부러 데리고 다녀요. 이 시선은 앞으로 너의 현실이다. 도망칠 필요가 없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른 것 뿐 이다. 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죠.”라는 말을 하며 가끔 시청에서 장애우를 보면 피했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그녀는 “처음의 이 직업을 가질 때 목표는 장애우에게 놀이치료나 음악치료를 해주는 것 이였는데 지금은 그 목표를 이룬 상태에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뭘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저 장애우들이 하루를 즐겁게 살게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어 그녀는 “아이들이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배고픔을 표현하는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라며 자신이 바라는 바를 털어놨다.

우리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복잡한 감정들로 뒤엉켰다. 장애우를 피하기도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럽기도 하였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행복해 하는 김하영씨의 모습이 직업을 그저 먹고 사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되어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여유를 찾기란 힘들다. 그러나 김하영씨의 얼굴에서는 힘든 기색은 커녕 오히려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나와 조금 다르다고 장애우를 피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은 더더욱 황폐해지는 것은 아닐까. <양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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