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살지

어느새 마지막 학기의 끝을 앞둔 나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갓 고등학교 졸업해서 새내기로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나는 사회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저 고민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살 수는 있다.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밥을 굶는 일은 이제 거의 없으니까. 실제로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휴학하고 쓰리 잡을 뛰었다. 세 가지의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구나였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것은 현재 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쓰리잡을 뛰면서 예전 부모님께 받던 용돈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통장에 상상만 하던 몇백만 원이 꽂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공허했다. 돈만 많으면 행복할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돈이 있어도 내 일상은 그대로고 오히려 불안함은 더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20대인 나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데 50대인 부모님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많지 않을까? 사실 이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대인 나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창창한 앞날을 만들 수 있다지만 인생의 반환점을 돈 50대의 부모님은 나보다 걱정이 많으면 많았지 덜할 것 같진 않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 뭐 먹고 살지라는 고민은 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그래서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런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책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 엄마가 나에게 서점에서 책을 하나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에 책 사다 달라고 잘 안 하시는 엄마인데 그런 부탁을 하시니 내심 놀랐다. 그 책의 제목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곧 가족 독서 릴레이의 도서가 되었다.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가로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말 중 하나이다. 마흔은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시기다. 나는 20대라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까진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은 없다. 물론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이 없던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순간마저도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나의 가치관 영향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려면 현재를 과거처럼, 현재를 미래처럼 의식하라고 했다.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재의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는 것이므로 오늘의 가치를 즐기라는 말이 와닿았다.

 

그리고 행복을 논하면서 가장 공감됐던 부분이 있는데, 타인의 생각을 의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나타나는 게 명예, 지위, 명성, 출세 이런 것이다. 늘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과의 지나친 비교는 자존감 하락을 일으키고 부정적인 생각만 만들뿐이다. 나도 인스타그램에서 지인들이 올린 게시물을 볼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든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기가 꺼려졌고, 이제는 정보를 찾을 일이 있는 게 아니면 거의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을 멀리하니 자존감이 올라가고 삶의 질이 높아진 느낌이다. 이렇게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들어보니 내가 서두에 말했던 불안정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분명 나는 쓰리잡까지 하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었지만 불안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출세, , 명예가 나의 미래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타인의 거울에 비친 모습대로 살지 말고 내 기준에 맞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독서 후 한 줄평에 Carpe diem(카르페 디엠)이라는 문구를 썼다.

 

릴레이 독서 두 번째 주자는 엄마였다. 원래 이 책을 먼저 사달라고 한 건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의 독서 후 한줄평은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다. 염세주의라는 말 자체가 세상 및 인생을 비관적으로 해석한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읽은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보다는 긍정적인 성향이 더 많이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염세주의자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는지. 엄마는 쇼펜하우어가 자살을 미화하는 염세주의자라고 말했다. 엄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쇼펜하우어를 이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자살을 미화했다기보단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쇼펜하우어가 자살을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복 추구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게 맞다. 어쩌면 자살을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를 마냥 부정적인 인물로만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세상이 힘들고 삶이 고통스러운 건 당연한 거니, 그런 순간들마저 즐기려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마냥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로보단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서 좋았다. 아무튼, 같은 가족인데도 하나의 책을 두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니, 다양한 의견을 나눠보자는 가족 독서 릴레이라는 본래 취지에는 성공적으로 부합한 거 같긴 하다.

 

세 번째 주자는 원래 아빠였다. 하지만 책의 전달이 늦기도 했고 밤늦은 새벽에 퇴근하시는지라 얼굴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의 독서 릴레이는 아직 적지 못했으나 나중에 책을 읽고 난 후 아빠의 생각도 물어봐야겠다.

 

이렇게 가족 독서 릴레이가 마무리됐다. 가족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고 가족의 새로운 공통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어느샌가 심도 깊은 대화는 줄어들고 밥 먹었니”, “잘 자라이런 안부성 대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가족과 함께 읽으려고 노력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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