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내가 하는 일편단심 대답이 있다. 직업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사는 것!'이라 답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반대편에는 뭐가 있을지 늘 상상한다. 예상치 못함, 모험, 혹은 위험이 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항상 바라면서.

가족 독서 릴레이의 첫 주자는 나지만 엄마, 아빠와도 접점이 있고 공감이 될만한 책을 고르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 극명하게 상반된다. 엄마는 여행을 통해 '식견을 넓히고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빠는 '힘든 일 다 잊고 한 번이라도 웃기 위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나는 '똑같은 시간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잠시나마 그 사람들이 되어보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고른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가님이고,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기도 하다.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얼마나 짙게 들리던지, 그 점에 반했다.

사실 이 책은 여행의 밝은 부분보다는 가려진 부분을 더 다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전혀 다른 타국에서 여행자는 결국 이방인이라는 존재로 여겨지며,  심각할 경우 추방에도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안정적으로 쉴 수 있는 나의 집이 존재함에도 왜 우리는 그토록 돈과 시간을 쓰며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책을 다 읽고 내가 내린 해답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기 때문'으로 맺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떠나 생전 처음보는 곳에 도착하면  그 순간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순간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나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에 귀를 귀울이고 나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려는 태도를 스스로에게 취하게 된다. 이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뭔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깊게 사유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올해는 참 행복하고 감사한 해였다. 2월에 오사카, 7월에 미국과 캐나다, 11월에는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는데  전부 울면서 돌아왔다.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벅참과 감동의 눈물인가, 나의 평소 일상과는 괴리감 있는 광경들에 슬픔의 눈물인가. 사실 도피성을 목적으로 한 여행을 떠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의 허무함은 어마어마하다. 오히려 한동안은  환상에 빠져서 내 주변 해야할 것들을 더 미루고 외면하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이건 결국 여행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반증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구절은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다.  여행은 일상에 부재하는 어떠한 것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도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 무한한 매력 때문에 나는 새로운 여행지를 찾고 또 찾아 나선다.

아빠는 이 책을 읽더니 '음, 여행으로 삶의 활력을 불어주는 건 맞는 말이지만, 인생의 고정적인 동력으로 삼는 건 위험할 듯 싶네.  나라면 여행하는 동안 아무 생각없이 무소유 나그네가 되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야. 원래 여행의 한자가 나그네의 길이라는 뜻이잖아.' 라며 아빠 방식대로의 감상평을 내어주었다. 

엄마는 엄청 진지하게 읽었는지 카카오톡으로 길게 보내왔는데, 이하부터는 엄마가 문자로 보내준 감상평이다.

'딸에게 종종 책을 추천하고는 한다. 학교 가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책 들여다볼 시간 없다고는 하지만, 책 한 권 짬내서 읽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잔소리 해버린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나에게 주는 과제라며 책을 건넸다. 책 제목을 보니 풉-하고 웃음이 먼저 났다.  허구한 날 '여행, 여행'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이제는 책으로도 이 난리를 피는 구나 싶었다. 꼭 좀 읽어보라며 준 책의 이름은 '여행의 이유'. 밑줄도 많이 긋고 최대한 열심히 읽은 티가 나게끔 하라는 당부와 함께  약 3주에 걸쳐서 읽었다.

가장 와닿은 부분은 인생은 여행이고, 인간은 여행자라고 비유한 부분이다. 어느덧 반 백년 넘게 살다 보니 배낭 메고 캐리어를 끌고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떠나는,  즉 긴 인생 여정의 한 부분 보다는 인생 전체의 여행을 생각하게 됐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언젠가 돌아올 집이 있지만, 인생 여행은 한 번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올 집이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하는 긴 삶의 여정 동안 만나는 사람들과의 모든 시간을 소중하고 의미있게 보내려고 한대. 우린 삶이란 여정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만나 긴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가끔은 가까운 곳부터 먼 지역까지 인생의 활력을 위해 또는 각자 목적에 따라 또 다른 의미의 여행도 한다. 여행이 끝나고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즐거운 인생 여행이길 바라며 앞으로 남은 여정을 열심히 살아가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이다.  

나름 잘 읽어보려고는 했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 여행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앞으로도 더 다가가고 싶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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