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너무 어려워. 근데, 특별하잖아! 

시집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시집은 너무 불확실했다. 무수한 해석들이 가능하기에 시집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이 필요한 나에게 시집은 그저 뭉뚱그려진 덩어리같은 느낌이 들어 기피하곤 했었다. 어느정도의 스토리와 뼈대가 있는 소설이나, 현실성을 가득 담은 비문학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시집은 작가 스스로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정의이자, 표현의 극치이기에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래, 시집을 어려워서 싫어했다.

 

하지만,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답이 정해진 듯한 소설과 비문학을 읽는다면 또, 그 나름대로의 해석이 재미있긴 하겠다만 너무 뻔하지 않을까? 했다. 다들 비문학이나 소설, 에세이로 가족 독서릴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한번 실험하기로 했다. 나는 그럼, 내가 기피하는 시를 통해 가족들과 소통을 해봐야겠다.

 

이제니의 세계를 들여보다.

손에 잡힌 책은, 내가 제주도로 내려올 때 가져왔던 작은 시집이었다. 과거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 작가의 시집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줘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골랐던 시집이었다. 이제니 작가님의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가장 먼저 꽂혔던 것은 제목이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이 아름답다니. 너무나도 시집스러운 제목이었다. 실은 이제니 작가님이 쓰신 시집들은 이상하게 마음을 울리는 제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시집 뿐 아니라, <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이라는 책들도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권, 한권 사다보니 어느새 나의 책장 한켠엔 이제니 작가님의 책이 꽤나 많았다.

 

이제니 작가님은 2008년 경향 신춘 문예 시 페루로 등단하셨다. 최근엔 67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에서 수상했다. 실은 나에게 작가님의 수상 경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목에서 확 끌리거나, 문체에서 확 끌리거나. 아니면 나의 마음을 끄는 듯 특별한 비유를 쓰시는 작가님이 있다면, 홀린 듯이 책을 사서 읽고는 했으니까. 이제니 작가님은 그 중 제목에서 끌렸고, 특별한 비유를 쓰는 작가였다. 이제니 작가님은 슬픈 마음을 슬프고 처절하게 표현하고, 기쁘고 소중한 마음을 환희를 가득 담아 표현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슬픔을 이야기하고, 증오를 이야기했으며 단단하게 소망을 단어, 문장, 문단에 담았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담담하게 내면을 표현하는 작가님의 세계가 너무 좋았다.

또 나는 언어 유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제니 작가님은 완벽했다. 이제니 작가님이 고른 단어들은 서로가 만나 의미를 구사하고, 단단한 뜻을 이루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서 검은개중에서 그 매력이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이 책도 망설임없이 골랐다. 매력적인 문체와 함께 마음을 울리는 제목까지. 가족에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렴 상관없었다. 내가 보는 작가의 세계와 가족들이 보는 작가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이 책은 아주 얇다. ‘현대문학이라는 출판사에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발행된 단행본이다. 현대 문학에서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해, <현대문학> 지면에 먼저 내보이고, 그 이후에 다시 단행본으로 발행하는 식으로 진행된 시집이었다.

이 책에서 가족들에게 먼저 보여준 페이지는 울고 있는 사람’,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처음처럼 다시 우리는 만난다’,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이었다. 내가 먼저 페이지들을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다시 책을 읽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라는 위로의 세계

아빠의 감상평은 이러했다.

아무리 헤매더라도

나 자신은 언젠가 다시 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유진이도 이 정신없는 세상에서, 뜻하지 않는 고난과 역경을 만나서 내가 제 자리로 가는지 모를 그 상황이 있을 거야. 하지만 너는 결국 너의 자리를 잘 찾아갈 것이다-며 나를 묘하게 위로해주셨다.

아빠는 늘 항상 나를 묘하게 위로하셨다. 종종 팀플에 지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에, 일에 치여 힘들어 할 때, 아빠의 카톡 상태메세지를 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참 멋진 일입니다.”

아빠의 건강한 마인드가 상태 메시지에도, 감상평에도 묻어나오는 듯했다. 아빠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작가는 담담하게 우울과 슬픔을 이야기 하지만, 그 안에 따뜻함이 있다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즐거워하셨다. 실은 나는 이 시집을 한없이 어렵고, 수많은 의미가 숨어있다고 봤는데 아빠는 그저 이 시를 위로라고 받아들인 기분이었다. 아빠의 세계는 위로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라는 말의 응원

엄마의 감상평은 이러했다.

외부로부터 오는 자기 자신의 평가에 자신을 내어놓지 말자.

나는 존재만으로 귀하다.

또 위로를 받았다. 첫 문장이 우울을 꽃다발처럼 엮어가는 사람을 본 이제니 작가님은, 그 우울에 갇혔다고 생각하지 말고 걸어가 밖으로 나가라고. 걷고 걷다가 다시 깊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라며- 위로했다.

엄마도 그러한 세계를 본 게 아닐까. 다시 돌아오라고, 비교하면서 자신을 해치며 나아가기보다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결국 엄마에게 돌아오라는 세계를 봤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엄마 또한 돌아갈 곳이다. 제주도로 떠나오면서 겪었던 감정들은 반짝일 때도 있지만, 어떤 것은 모나고 따끔하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힘들면 돌아오라고, 네 자신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다.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너는 다시 너의 존재를 떠올리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라며 나를 응원해줬던 기억들이 나를 다시 돌아가게 한다.

 

가족이라는 또다른 이름은, 연대

동생의 감상평은 이러했다.

각자의 등이 각자의 보호막이 된다는 궤변이,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된다는 게

슬프지만 또 아름다운 것 같다.

동생은 현재 극작과를 다니며, 예술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감상평도 허세와 함께 예술적인 감수성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언제나 가족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를 몰랐던 사람들이 만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다고. 그러한 감정들을 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서로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동생이 읽은 세계는 이렇지 않았을까.

서로를 외면해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일 뿐. 그렇게 서로가 가족이 되는 사실들이 슬프지만, 또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손난로의  다정

친구의 감상평을 하나 더 받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도 한번 읽어줄 수 있냐며 책을 내밀었고 친구의 감상평은 굉장히 귀여웠다.

어둡고 쓸쓸한 부분들이 많았다.

작가에게 손난로를 흔들어주고 싶다

원체 다정한 성격의 친구는, 작가의 세계를 넘어, 작가를 본 것 같았다. 작가를 위로해주고픈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꼭 그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시집을 읽고, 어렵지만 또 그만의 감성과 세계를 즐기는 것이 좋았다. 꼭꼭 씹어 읽으면서 따뜻하게 다가오는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고

가족 독서릴레이를 통해, 나는 가족과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했다. 동생이 말하길, 우리 가족은 대화는 하지만, 소통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며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가족 독서 릴레이를 통해 또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불확실한 작가의 세계를 통해, 확실한 가족과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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