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독서 릴레이 과제를 받았을 때, ‘흥미롭다’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혼자 책을 읽어본 적은 많지만, 가족과 같은 책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눈다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읽을 책을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평소에도 책에 관심이 많고, 전자책 서비스도 구독하고 있기에 독서 릴레이에 대한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대학생이고 과 특성상 바빠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나는 동생이 부담되지 않을 정도 분량의 책을 찾아야만 했다. 서점에서 동생과 같이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책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끌린다고 해서 남도 그렇단 보장이 없으니까.

 긴 시간 소설 코너에서 기웃대다가 눈에 들어온 책은 ‘구의 증명’이라는 책이었다. 이전에 유튜브에서 스치듯 본 글귀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대충 보아도 그 문장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문장을 곱씹으며 동생에게 다가가 이런 사랑 이야기에 대한 소설은 어떻냐고 물어보자 동생은 읽어보고 싶다고 답했다. 다행히 연애나 사랑에 관심이 많아서 생각보다 흔쾌히 대답을 받은 것 같다.

 
 릴레이의 시작점
 첫 주자는 나였다. 책은 얇아서 하루면 읽겠다고 생각했다.

구의 증명, 최진영
구의 증명, 최진영

 첫 내용은 담의 소망, 자신이 아주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구의 죽음에 대해 써졌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문이 담의 시점이면 본문 위의 구(球)가 비어있고, 구의 시점이면 그 구(球)는 채워진 상태였다. 구와 담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사이였다. 둘의 사정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분명했다. 소설 내내 구는 자신의 부모가 남기고 간 빚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겨야 했다. 담 또한 구와 함께 지내며 도망치는 삶을 피할 수 없었다. 구와 담은 공장에서 노마라는 아이가 죽기 전까지는 항상 함께였다. 사고로 아이가 죽기 전까지는, 사고 이후 둘은 그 충격으로 서로를 피했다. 둘이 다시 만난 건 구가 군대를 전역한 후였다.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를 몰래 지켜보면서 다시 돌아가고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 이해가 안 됐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다가가서 대화를 통해 재회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그런 장면들이 둘을 더 애틋하게 해준 것 같다. 좋아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둘 사이의 거리가, 그마저도 사랑해서 그랬단 걸 서로가 알기 때문에 나중에 재회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소설의 끝에 결국 구는 죽는다. 구와 죽기 전까지 나누던 대화, 담이 말한 죽음에 관한 생각들은 구가 죽은 후에 담이 구를 먹는 장면에서 계속 상기되었다. 독특한 건 구가 죽었다고 구의 시점이 끝나지 않고 먹히면서 담에 대한 구의 감정들이 계속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을 먹으며 드는 생각, 사랑하는 사람을 느끼기 위해 시체를 먹는 행위, 죽어서도 그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

 결국 구는 담과 하나가 되어 천 년 동안 담을 느끼기 위해 담의 영생을 바라는 것이, 구의 증명이었을까. 식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게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증명인지 생각하였다.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대상을 증명한다는 의미로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을 단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해서, 기댈 곳은 서로 말고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릴레이의 중간, 동생
동생의 반응은 내 예상과 비슷했다. 가끔 내가 사랑에 관한 책 대목을 보여주면 좋아하였기에 책도 잘 맞을 거란 생각을 했다. 동생은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상대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너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은 채로 기다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데, 유한한 삶을 살고 오는 것 또한 긴 시간인데 그 이상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말이 감명 깊었다고 한다.

구의 증명, 최진영
구의 증명, 최진영

 

 릴레이의 마침표, 엄마
가장 의외였던 건 엄마의 감상이었다. 엄마는 내가 말하기 훨씬 전부터 책의 존재를 알았고, 읽어보았다고도 했다. 엄마는 책이 기괴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는 자신이 책도 좋아하고 소설도 많이 읽어봤지만, 소설 속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다고 하셨다.

 

 독서 릴레이를 하면서 가족들과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말이나 생각이 옳다’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책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경험에 의의를 두었다. 책을 다시 펴서 읽을 때 ‘동생과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혹은 처음 가족끼리 책을 읽은 후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는 내 생각은 다르다고 했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읽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겠네.’라는 등 공감이 되어 좋았다.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기에 가족 독서 릴레이가 과제라기보다는 서로를 알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라고 느낀다. <2023 출판문화론/ 고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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