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구네 어머님이 전업주부이신 것을 듣고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해야지!”라고 했던 적이 있다. 엄마랑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 맞벌이 가정인 나에겐 당연한 공식과 같은 문장이었다.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시면 퇴근하실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밤에 잠깐 보는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좋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빠는 딸 바보였다. 하지만 대체로 딸 바보들이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 아빠는 무엇이든 못하게 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학생은 화장을 하는 게 아니니까 주말에 놀러 갈 때도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밤은 위험하니 해가 질 때쯤엔 집에 들어와야 한다. 아빠는 내가 걱정되고 날 사랑해서 안된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나에겐 지나친 구속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엔 화장을 지우고, 해가 질 때쯤엔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왔다고 둘러대며 나는 점점 더 거짓말쟁이가 되어 갔다.

 엄마는 본인이 장녀였던 것처럼 장녀인 나에게 바라는 게 많았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땐 네가 동생의 부모님 역할을 대신해야 하니까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했다. 고작 두 살 차이이지만 집에 동생과 나 둘만 있을 땐 정말 내가 엄마가 된 것처럼 동생을 챙겨야 했다. 동생이 어린 만큼 나도 어린데 왜 나한테만 그런 책임이 주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엄마의 잔소리가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엄한 부모님이 싫어하는 것과 허용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자연스럽게 다른 핑계를 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몰래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의 눈에는 내가 몇 살이든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몇 살이 될 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지, 어떤 핑계를 댈지 고민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엄마 아빠 앞에선 항상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에 마음속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때 ‘심리학의 역설’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왜 잘 되라고 한 말이 화를 부르고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이 문장은 내가 정말 궁금해했던 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얼른 해결책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서 한 잔소리가 역설적으로 상대를 망치는 이유는 첫째, 상대의 부정적 감정, 공포와 불안을 자극해서. 둘째, 상대를 더 수동적으로 더 무책임하게 만들어서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충고와 잔소리를 일삼는다. 밖에 나가서 욕을 먹느니 차라리 부모인 내가 먼저 욕을 하고 바로잡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난과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불안과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비난과 잔소리를 통해 유발되는 긴장과 불안은 적절한 수준을 넘어서는 스트레스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행력을 떨어트린다. 상대방을 위해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상대가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행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패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지 않으면 자신의 일인데도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면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괜찮다는 말은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실패했다는 사실을 내가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과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비난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괜찮다는 말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고 그것을 선택하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엄마 아빠께 드리며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있던 얘기를 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좋지만 이런 이유로 엄마 아빠가 멀게 느껴졌다고, 처음 내가 책을 내밀었을 때 두 분 다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아 했지만 덧붙인 말에 책을 가져가 읽으셨다.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부모님께선 그동안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는 계획적이고 상황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는 성향이어서 자유롭고 충동적인 성향인 나를 자기도 모르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아빠는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학생 때 많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었지만 그게 억압으로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하셨다. 각자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가족이지만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각각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성향에 맞게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년을 넘게 함께 살아왔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그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당연히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의 생각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가족들과 자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함께할 테니 지금부터 가까워져도 괜찮다. [2023 출판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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