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독서 릴레이를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책으로 진행했다. 이 책은 이야기의 흐름이 복잡하고 문학적인 표현이 많이 나와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부모님께 권하면서  이 책의 특정 부분만 읽게 했다. 이 부분은 책의 주인공 '나'가 작중 등장인물 '인선'의 집으로 가기 위해 해안도로에서 중 산간 지역까지 버스를 갈아타는 여정이 나온 부분이다. 여기서는 제주의 을씨년스럽고 혹독한 겨울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 구절들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회색 눈구름으로 덮인 겨울 하늘과 눈보라가 빗발치는 제주의 겨울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나는 이러한 묘사들을  읽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밥을 먹고 피를 나눈 우리 가족이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을지가 궁금했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탔던 버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 이 책의 초반, 주인공이 버스를 타서 버스 안팎의 제주를 설명한 부분이다. 사람이 많을 시간인데도 인적이 드문 버스, 버스 앞 유리창을 때리는 싸락눈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닦아내는 와이퍼, 손님이 탈 때마다 "어디 감수꽈?"라고 물어보는 버스 기사. 이 묘사들이 나온 부분을 읽으니 저절로 머릿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날, 시내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기사님은 내게 묻는다. "어디로 감수꽈?" 나는 답한다. "광령이요" 그러면 기사님은 "거기까지 못 가요, 그전에 내리셔야 해"라고 말한다. 찝찝한 마음으로 한적한 버스에 앉으면 버스 안에는 눈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와 와이퍼 소리만이 가득하지만 따듯한 히터 때문에 아늑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그 경험. 그 경험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폭설 속 운전

 나는 아빠에게 책을 건네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어딘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기랑... 여기 중 산간 지역 부분도 읽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겨울에 중산간을 가?"라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빠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중산간 지역에 눈이 쌓여 타이어에 체인을 감아도 올라가지 못하는 난감했던 경험을 떠올린 것이다. 아빠는 책을 다 읽고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가서 다행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아빠는 책에서 제주의 겨울을 묘사한 부분을 읽고 폭설 속 난감한 운전환경에 대한 경험과 감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나 보다.


피부가 아릴 정도의 추위


 엄마는 내가 표시한 부분을 빠른 시일 내에 다 읽어버렸다. 사실 진짜로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보기만 해도 춥다. 겨울을 잘 표현했다." 라는 평을 남겼다. 평소에 추위를 잘 타는 우리 엄마다운 평이었다. 엄마는 겨울날 추위에 몸을 벌벌 떨던 수많은 경험이 떠올랐나 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지역에서 같은 겨울을 지냈다. 하지만 그 겨울을 묘사한 같은 글을 읽고 서로 다른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그려냈다. 나는 겨울 버스의 경험과 아늑함을, 아빠는 폭설 속 운전의 난감함을, 엄마는 겨울의 차가운 감각을 떠올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 이유는 사소한 경험에서 기인했다. 같은 환경에서 사는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가 관점의 차이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같이 지내고 가깝기 때문에 서로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한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서로 이해하려고 집착하다간 큰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는 서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단 그저 존중하고 응원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출판문화론/김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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