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의 몸으로 사대부들에게 칭송받고, 자신의 재산을 풀어 기아에 허덕이던 제주도민들에게 쌀을 나누어준 ‘김만덕’을 아는가? 여기 김만덕을 롤 모델로 삼아 자신의 위치에서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려는 여인이 있다. 바로 동광양에 위치한 가게 ‘꽃세상’의 사장님인 김경산(61)씨다.
   

▲ 김경산씨

“강연을 하기 위해 한 가지만 공부한 것은 아니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냐고 묻자 원래 꽃을 좋아하였고, 20대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 꽃을 배웠다고 한다. 직장을 퇴직하고 할 일을 찾다가 꽃집 일을 한지 15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꽃집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평화양로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원예치료와 미술치료를 하고, 제주시보건소에서 치매노인을 상대로 원예치료 강사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지체장애인제주시협회 8년째 원예치료강사 일도 하시며 강사료를 받으시면 100% 사회에 환원하신다고.

 “제주대학교 원예치료 석사과정을 밟고, 미술치료 석사는 직접 서울에 가서 배웠어요. 원예와 치료를 같이 병행하고 있죠. 처음에는 강사를 하다가 재능기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노인시설이나 장애인시설, 초∙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있어요. 벌써 10여년 정도 된 것 같네... 꽃집을 열었지만 치료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원예치료와 미술치료 석사과정을 따고, 강의를 하려니 레크레이션 기술이 필요해서 웃음치료 강사 자격증도 땄죠. 예를 들어 원예치료를 한다고 치고 꽃 심기를 하기 위해 전문적인 말을 바로 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기 때문에 10분정도 워밍업이 필요하니 레크레이션쪽 기술을 빌리고, 꽃의 아름다움은 전문적으로 설명하고 치료는 상담 공부를 해서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경력이 붙다보니 이제는 별로 어렵지 않게 강연이 진행돼요. 하나의 강연을 위해 여러 가지 전문성을 빌린다고 할 수 있죠.”

“딱히 어려운 일은 없어요”

 그는 젊었을 적 아무래도 여자가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남자보다 힘들었다고. 아침 8시에 나와서 활동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내조를 잘 해주지 못했다고 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을 느꼈고, 남편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젊었을 때에는 회사생활을 하며 남편과 갈등이 조금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고, 협력해줘요.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는 가족들의 협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공무원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며 노하우가 쌓인 것 같아요. 그런 문제 빼고는 현재 느끼는 어려움은 없어요. 노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난 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 정말 뿌듯해요. 돈을 안 받는 활동이 더 기뻐... 그분들의 치매를 조금이나마 더디게 되게끔 하고 싶어요.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해요. 제가 이번에 만덕제 제관으로 뽑히게 되었는데, ‘실천을 하다 보니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지속적인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번 하면 계속 여러 곳에서 저를 초청해주세요. 감사한 일이죠. 꽃집 수입이 있으니 돈을 안 받아도 괜찮아요.”

나를 나답게 살고 싶어... 여성 한계 극복하고파

 “나를 나답게 사는 것.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노인이 되어도 후회가 없는 삶을 사는 것. 이게 목표에요. 눈을 감을 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요. 지금 꽃집 빌딩을 샀는데 자식들에게 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에요. 나눔을 실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나누고 싶은 것은 나눠야죠.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요. 돈은 필요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꽃가위를 놓지 않는 한 공부를 계속하고 80세까지는 하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보이셨다.

 “가게 안에서 체험프로그램을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돈을 버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고객들과 직접 심어서 느끼고, 성취감을 얻는 것.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이런 것 아닐까요?”

 “여성단체회장 등 저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어요. 제주도는 아직 힘들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인터뷰는 끝이 났다. 마지막에는 다음에 꽃을 살 때에 꼭 들리라고 말하시는 센스도 잊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이 김만덕처럼 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하였지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녀 못지않아 보였다. 한 사람으로써, 여성으로써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싶다. <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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