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참 많은 정책 ‘슬로건’을 갖고 있다. 구호라 할 수도 있고 표어라 해도 좋다. 2002년 국제자유도시를 시작으로 평화의 섬, 특별자치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이 그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칭호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제주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짧은 어구로 표현해 놓은 이 정책들의 공통점은, 개발과 개방을 통해 국제화 시대에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일견 개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평화의 섬과 세계자연유산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국제화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제되고 있는 담론(談論)이다. 국가, 기업, 지방정부, 개인 모두 국제화 담론에 편승하지 않으면 존립의 위협을 느끼는 지경이 되었다. 어떤 이는 이러한 국제화 담론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더욱 강조하는 것을 가리켜 ‘신자유주의’ 담론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제주의 그 많은 슬로건 중 국제자유도시는 다른 모든 정책 슬로건들을 압도하고 포섭하는 제주형 국제화 담론의 또 다른 이름이다. 특별자치도라는 슬로건도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보다는 제주의 국제화 추진을 우선한 것이었다.  

 우리 제주에서 외국자본 유치는 국제자유도시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신자자유주의의 담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외국자본 유치는 곧 제주도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2004년에 제주도가 “신제주 중국집 개점”을 외자유치 성과라고 홍보했을까. 그 압박의 정도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익히 들어왔던 것처럼, 국제자유도시는 제주를 홍콩과 싱가포르와 같이 사람과 물류 그리고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들 국제도시처럼 세계자본 유치를 위해 자본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는 특정 국가나 지역의 자본에 대한 선호나 편견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제주에 들어오는 자본은 모두 다 선한 자본인 것이다. 중국자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제주는 싱가포르 모델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다. 그게 바로 싱가포르의 토지정책이다. 담론경쟁 없이 신속성과 효율성만 강조한 나머지 제주는 싱가포르의 토지정책에 대해 주목하지 못했다. 싱가포르는 70% 이상의 땅이 국가 소유이고, 그 토지를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함으로서 땅으로 인한 부동산 투기나 지역간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나라이다. 당시 제주도지사와 정책 브레인들 그리고 제주언론들은 이를 몰랐던 것일까? 혹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과연 싱가포르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토지정책을 뺀 싱가포르 학습은 결과적으로 지금의 땅 문제를 간과하게 만든 셈이다.  

 최근 “차이나 머니가 제주도를 공습했다”는 류의 보도들이 힘을 얻고 있다. 제주지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언론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 자본에는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들이 번복되고 있는 것이다. 경계만 있고 성찰이 없는 이러한 보도들은 자칫 국제화 담론에 역행하는 국가 및 지역 우월주의 담론으로 치닫을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영토와 주권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담론경쟁이 형성되지 않고 곧바로 애국적 국가주의 담론이 득세하는 경우를 줄곧 봐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를 중국인과 중국자본에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 담론을 제주도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론장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은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제주에서 국제자유도시에 대한 새로운 담론경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본 칼럼은 한라일보 월요논단(2014.12.08)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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