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 
유머같이 들리는 이 말은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실제로 제주에서 사람을 처음 만나면 집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먼저 물어본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두 사람만 거치면 쉽게 친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고’는 제주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특히 더 용이하게 쓰인다. 도민 중심의 인맥이 제주에서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인데, 이를 제주에서는 괸당문화라고 한다.

애월읍 고내리 노인회 내의 '괸당 관계도'
애월읍 고내리 노인회 내의 '괸당 관계도'

‘괸당문화’
도민 간 결속력을 강화, 연결시키는 출신 학교, 지연, 혈연 등 각종 연고로 이어진 관계를 의미한다. 오래된 수탈의 역사, 혹독한 자연환경에 대한 생존의 수단으로 외부보다 내부로 강력한 연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 지역 특유의 괸당문화는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하지만 제주 특유의 끼리 끼리 문화는 타지인이 제주에 적응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했다. 

도민의 비율이 많은 제주대학교에서도 괸당문화를 볼 수 있었다. 
학교 대표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보면 타향살이에 힘들어 편입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놓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아닌 ‘아는 사람을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습관’이 타지학생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 것이다.

3명의 익명의 학생들을 통해 학내 괸당 문화에 대한 타지 학생에 대한 고충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다같이 초면이지만 , 도민은 별다른 과정없이 쉽게 친해져

"도민들과 친해진 것 같아도 거리가 느껴지는 순간이 꼭 존재했어요. 도민들은 원래 서로 아는 경우가 많고, 하다 못해 일면식이라도 있을 뿐더러, 심지어 아예 생면부지더라도 출신 지역, 출신 학교를 바탕으로 겹치는 사람을 추려 금방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학내 괸당 문화에 대한 타지 학생의 고충에 대한 물음에 A씨가 답했다. 

대부분의 타지 학생들은 도민은 학연, 지연으로 비교적 쉽게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내가 지내던 지역이더라도 대학에 가면 다 처음보는 사람들이고 많은 지역에서 온 새로운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대학교는 낯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주도는 나 빼고 다 친한 느낌이었어요. 이미 다 아는 사이고 저 혼자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적응해야 하는 느낌? 그래서 엠티를 가더라도 뭔가 잘 섞이지 못했고,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더라고요”

C씨는 도민은 이미 아는 사람이 많고 그들끼리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 쉽게 친해지기 힘들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학연, 지연으로 기존의 아는 사람을 바탕으로 친해지고 같은 도민이라는 점이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타지 학생의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학연, 지연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습성이 제한적인 대인관계를 만들어

“처음 사람을 사귈 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아는 사람끼리 사귀게 되고 그렇게 이미 다 친해져 있었어요. 아는 사람이 있으니 굳이 더 친해지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처음 도민과 대인관계를 맺는 과정에 대한 물음에 B씨가 답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이 나뉘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육지는 육지 친구끼리 뭉치고 도민은 도민 친구끼리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B씨는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대인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도민은 도민끼리, 타지 학생은 타지 학생끼리 친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육지에서 오신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고등학교에 대한 주제가 꼭 한 번씩은 나오는 것 같아요. 꼭 처음 만나면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보더라, 같은 고등학교 동창끼리 뭉치더라, 이런 얘기가 주로 나오는데 도민분들도 다 아시더라고요”

C씨는 학내에서 기존의 연고가 인간관계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하며 대다수의 타지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제주의 아는 사람을 통해 형성되는 커뮤니티는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시켰다.  결속력이 강한 커뮤니티에 타지인이 녹아들기란 쉽지 않았다. 제한적인 대인관계는 자연스레 도민끼리, 타지인끼리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수동적인 대인관계가 괸당문화를 극대화해

“변화에 거부감이 드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민의 경우 육지 사람에 비해 유달리 그렇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대인관계의 변화이기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아니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원래 아는 사람이 많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도민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는 A씨의 의견이다.

이처럼 기존에 아는 사람이 주류인 도민의 입장에서 그 이상의 대인관계를 만들어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수동적인 대인관계가 타지인과 도민 사이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괸당 문화는 학내 인간 관계에서 상당 부분 차지해

“학연, 지연 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해요. 같은 길을 걸어왔거나,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면 한 번 더 눈이 가는 건 사실이니까요. 물론 육지에도 학연, 지연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관계의 주가 되진 않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주는 그 학연, 지연이 지름길 같은 느낌이에요”

제주의 괸당 문화가 인간 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냐는 물음에 C씨가 답했다.

학연, 지연의 영향은 처음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시키는 범위까지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C씨는 기존의 연고와 더불어 공감대도 잘 맞지 않아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학연, 지연이 없는 육지생들은 제주도민 친구들과 친해지려면 멀리 둘러서 힘들게 가야하는 거죠. 공감대도 잘 안 맞다 보니 일정 거리 이상 친해치기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요. 용기를 내서 다가가더라도 그들만의 이야기에 억지로 끼기에는 무리가 있죠. 괜히 제가 불청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교내 괸당문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토 자체도 작지만, 그 안에서도 자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해 생활 반경이 제한되는 곳이라서요. 또한 출륙금지령, 4・3 사태 등 수탈의 역사가 반복된 시대적 배경도 외부인을 배척하는 괸당문화가 형성되는 데 일조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아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학내 괸당 문화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A씨가 말했다.

제주대학교 정문
제주대학교 정문

학내에서는 의도적으로 타지인을 배척하고 차별하기 보다는 의도치 않게 타지인을 소외하는 모습으로 괸당 문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는 사람을 찾고 기존의 연고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학연, 지연이 없는 타지 학생들은 인간 관계를 만드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나아가 기존 인간관계에 머무르려는 특징, 변화에 소극적인 대인관계 특성까지 합쳐져 다수의 경우,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완전히 새로운 대인관계를 맺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민 학생의 경우, 타지 학생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있어도 그 실상을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본인이 직접적으로 겪는 문제가 아닐 뿐더러, 괸당 문화가 고질적이고 좋은 문화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어 지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괸당문화를 인지하고 지양하는 도민은 노골적으로 타지학생을 배척하지 않았고 타지 학생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타지 학생들이 은연중에 소외당하고 있고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러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대학은 서로 소통하고 조화됨으로써 그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지금의 괸당문화는 소통의 창구를 차단함으로써 타지인과 도민 간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편한 인간관계만을 지속한다면 이는 비단 소외감을 느끼는 육지인 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편한 접점이 있는 사람들로만 관계를 쌓으려 한다면 물은 흘러갈 수 없다.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인으로서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이 없듯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경험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강은주/ 2023 신문제작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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