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안경까지 구입하고 파친코를 소파에 앉아 읽는 걸 보고 릴레이 도서를 ‘파친코’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아빠가 이미 읽은 책이니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독서 릴레이를 하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제일 염려됐던 인물이 아빠여서 더 그랬다.
 
가족이지만 가족이라서 할 말이 없다. 대화를 한다고 해도 ‘어. 왜. 아니. 싫어.’가 대부분이다. 대화 주제도 없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조언을 가장한 비방과 지적이 쏟아진다. 귀가 아파지기 시작하면 관심을 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켜고 밥을 먹었다. 그래서 파친코가 우리 가족에게 주는 의미도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친코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선자와 관련된 인물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선자는 영도에서 고한수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임신을 했지만 고한수가 일본에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별한다. 선자의 하숙집에서 머물고 있던 이삭의 도움을 받아 결혼하고 이삭의 형인 요셉과 요셉의 아내 경희가 있는 일본으로 간다. 하지만 생활은 좋지 못했다. 그 후로 선자의 아이가 태어나고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선자와 선자의 손자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담담하게 담았다.
 
줄거리를 단 몇 줄로 요약하기에는 내용이 방대한 책이다. 장편소설이라 총 2권으로 분량도 많았다. 심지어 도서관에서도 파친코 책은 예약 중이라서 대출할 수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 집에 있는 파친코 책 1권을 가족과 돌려가면서 읽기로 했다. 아빠, 나, 언니, 동생, 엄마 순으로. 일주일씩 기간을 두고 읽었는데 역시 인생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읽는 속도가 제각각이었고 다음 사람이 책을 넘겨주지 않아서 자꾸 미뤄졌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어?”라고 물으면 “1권”, 며칠 뒤에 또 물으면 답은 똑같았다.
 
결국 완주한 사람은 나와 아빠뿐이다. 놀랍게도 여기서 파친코 드라마까지 완주한 건 아빠가 유일하다. 언니는 1권 중반까지, 동생은 1권, 엄마는 154쪽까지 읽었다. 나는 숙제지만 가족들은 숙제가 아니기 때문에 바쁜 시간을 내서 최선을 다해 읽어줬다는 것으로도 감사하다. 오히려 각자가 읽은 분량에서 파친코를 보고 느낀 내용도 달라서 흥미로웠다. 함께 나눈 질문들을 가져왔다.
 
먼저, ‘선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봤다. 아빠는 “선자는 맞닥뜨리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야.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간에 어떤 상황에서 여건에 맞닥뜨리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고 대답했다. 술에 취한 상태였는데도 말하는 아빠의 눈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빛이 보였다. 사뭇 진지한 모습에 낯설고 흥미로웠다.
 
언니는 “파친코 드라마에서도 순자는 강인한 여자라고 나오는데 나는 지금 시대상에서 강인한 여자를 생각했거든. 그런데 중반까지 읽은 선자는 선자가 신뢰하는 주변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사람이더라고. 생활력이 강하고 그 시대에 비해 강인한 여자인 건 알겠지만 현대 시점에서 강인하다고 느껴지진 않았어. 그래서 끝까지 보면 어떤 점이 내가 선자한테 감명 깊어할지 궁금하고 기대돼”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내가 “나도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선자를 기대했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어”라고 말했다. 언니가 “생각해 보니까 만약에 작가가 선자를 영웅적으로 서술했으면 과연 극찬을 받았을까 싶어. 복합적으로 그려내서 좋았던 것 같아.”라고 이어 말했다.
 
두 번째 질문은 “선자에게 고한수는 어떤 존재였을까?”였다. 언니는 “쓰레기. 나이 차도 많이 나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 선자를 임신시켰잖아. 고한수의 권위가 그 정도이기 때문에 선자를 도와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 친구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소외된 친구에게 말 거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어.”라고 말했다. 동생은 “그래도 그 시대상 고한수 같은 사람이 없었을 텐데 고한수가 조력자로서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라고 답했다. 각각 다른 분량을 읽었던 언니와 동생의 질문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둘 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고한수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파친코는 어떤 의미를 주는 책일지’ 물어봤다. 아빠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정치 경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본이 나쁘다, 한국이 멍청하다가 초점이 아니라.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외에도 파친코는 복합적인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표현을 바꿨으면 좋았을 부분, 변화하는 사람들, 일본인이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길고 깊게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글쎄. 나는 선자가 물론 대단한 영웅도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지금의 나로선 엄두도 내기 어려운 희생과 노력을 했다는 것, 선자와 얽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결국 말하고 싶었던 건 방대한 역사적 이야기가 아닌 그 속에 실제로 살아 숨 쉬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가족 첫 네컷 사진과 파친코 첫장 "we are a powerful family" 문구와 이민진 작가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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