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릴레이를 시작하기 앞서 가족들 모두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도서 선정에서부터 독서, 그리고 독후감까지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하루 시간을 정해 보이스톡으로 각자 이전에 읽은 도서 중 함께 공유하고 싶은 책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러 도서가 후보로 나왔고, 열띤 이야기 끝에 우리는 가족 모두의 공통 관심사인 할아버지에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있어 외조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 시간이 많아 정말 애틋한 분들이어서 모두 동의했다.

여러 단어를 입력하며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마침내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의 내용을 짧게 읽어보니 책과 담을 쌓고 살던 소년과 작은 책방을 운영하던 한 파킨슨 환자인 할아버지가 요양원에서 만나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책과 담을 쌓고 살던’, ‘파킨슨’, 그리고 할아버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는 게 한 번 몰입해서 읽으면 정말 재미있지만 끈기 있게 끝까지 읽는 것이 항상 힘들어 언젠가부터 점점 거리가 먼 존재로 다가왔다. 가족들 또한 지난 시간 동안 각자만의 여러 이유들로 책과 멀리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책 속 소년의 모습에 우리를 투영해 가족 모두 문학에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선정한 가장 큰 이유책 속 주인공 할아버지처럼 우리 외할아버지도 몇 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기에 더욱 눈이 갔다독서 릴레이를 통해 가족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비록 각자 멀리 흩어져 있어도 책을 읽을 때만큼은 외조부모님과 함께 했던 여러 기억들을 떠올렸으면 하였고, 그렇게 우리 가족의 독서 릴레이는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바로 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 들어서는 에세이만 읽어서 그런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소설, 그것도 외국 도서여서 완독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을 느낀 건 책 사이사이 고스란히 남은 표시의 흔적들이었다.이라 하면 학창시절 트라우마가 가장 먼저 생각났던 소년이 어느새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낭독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모습하루에도 수많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요양원에서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해 시작된 방구석 낭독회가 모두를 위한 낭독회로 커져 온기를 불어넣는 모든 과정은 책의 힘이 과연 막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당신의 떨리는 손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피키에 할아버지의 손과 입이 되어주고, 나아가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대신 수도원까지 걸어가는 여정에 발이 되어준 그레구아르. 책 읽는 사람에서 그를 대신해 걷는 사람으로 발전하는 둘의 관계성을 보면서 나이도, 환경도 그 어떤 상황도 불문하고 책은 누구든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때로는 가족이 될 수 있는 매개체이자 존재임을 느꼈다.

 두 번째 주자, 엄마.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p.54)”

엄마는 이 구절에서 눈이 멈춰버렸다고 한다. 피키에 할아버지를 통해 책과는 담을 쌓았던 그레구아르가 책을 읽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노인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교감과 소통을 통해 행복해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즐거움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다른 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일이라면 엄마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득 어렸을 때부터 몰입도 있게 동화구연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이 책은 또 하나의 그레구아르를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주자, 작은 언니

언니는 석사 졸업과 박사 과정 준비로 바쁜 탓에 독서 릴레이를 마무리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 준 덕분에 지금 이 독후감을 쓸 수 있게 되었다언니는 우리 할아버지도 파킨슨이 있어서 더 마음이 갔던 책이었다고 한다. 비록 몸은 불편하시지만 본인이 좋아하시는 책을 통해 젊은 청년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었고, 언니도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며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한 자리에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책 선정을 위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부터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의 요청에 응해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이런 기회가 또 한 번 생긴다면 그때는 이번 릴레이에는 참여하지 못한 아빠와 큰언니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리 가족은 책으로 하나 되어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각자 조부모님과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우리 가족의 독서 릴레이를 매듭 짓고자 한다. 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우리가족 버킷리스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우리가족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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