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전쟁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전쟁에 대한 나의 인식 때문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고 굳혀진 전쟁의 이미지는 남성의 것이었고, 여성은 항상 보조의 역할이었다. 심지어 현재 수강 중인 교양수업 <세계전쟁사>에서도 여성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쟁사 속 여성은 낯설고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왔다.

나는 늘 책을 읽기 전 제목을 통해 내용을 추측해본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늘 말했듯, 여성들을 참전시키지 않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참전했다. 조국인 소련의 부름으로 전쟁터에 직접 나가 싸웠다. 여성을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는 국제적 정세와는 다르게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붉은 군대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 초반부에서는 소련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구나’ 내심 기대하면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참전했고, 전쟁 이후 사회는 이들을 제정신이 아닌, 결함이 있는 여자로 만들었다. 다른 나라들과 다름없이 소련 또한 여군을 가부장제의 가치관을 완전히 파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후 남녀는 같은 전장에 참여해 함께 살아남았지만 다른 대우를 받았다. 책 중 한 여군의 아버지는 참전했던 딸이 전쟁에서 받았던 훈장을 모두 감추며 “전쟁은 지나갔고 이제 다른 삶을 살아야해”라고 말한다. 이 당시 사회는 개인, 국가 할 것 없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으로서 모욕적이었다.

여성의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 ‘사마에게’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사마에게'라는 영화는 시리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사마의 엄마가 사마를 안고 전쟁을 피하며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사마 엄마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을 이해할 수 있다. 사마의 엄마는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사마의 엄마, 부인의 역할을 하며 가족을 지켜냈다.

영화 '사마에게'. 사진=조승주
영화 '사마에게'. 사진=조승주

책에서 등장한 여군과 사마의 엄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 시대의 성역할을 함께하며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몸이기에 더 사명감을 가지고 전쟁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사마의 엄마에게 ‘아이를 팔아 장사를 한다’고 말하고, 여군들에게 죄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승패 없는 두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여성들의 전쟁은 전장을 벗어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역사책과는 다르게 인터뷰 형식의 논픽션 소설로 쓰였다. 책을 읽는 동안 살아남은 그녀들과 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부터 조금은 희망적이었던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 때문에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흥미로운 주제라 해도 전쟁이라는 어두운 이야기와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울분의 감정이 솟구쳤다. 이들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들의 아픔을 덮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어나간 이유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억울하고 분해도 죽지 않기 위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지금도 싸우고 있는 그녀들은 나는 기억한다. <조승주/2022 저널리즘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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