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함에 욱신거리는 아픔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와 인선의 경험을 통해 제주 4.3의 아픔을 풀어나간다. 작품 속 고통 묘사는 사실적이다 못해 괴롭게 느껴졌다. 주인공 경하의 친구 인선의 손가락이 목공방에서 작업하던 중 잘렸다. 이어 붙인 손가락의 신경 회복을 위해 인선은 3시간마다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다.

이어 책에서는 제주 4.3 피해자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서술한다. 이러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신경도 함께 욱신거렸다. 글을 읽고 신경이 욱신거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기에 아픔의 정도를 알지 못하고, 죽음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받쳐들고 있는 제주인의 희생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업으로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제주 4.3에 관심이 없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4.3 자체를 알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때 TV 방송을 통해 71주년 제주 4.3 추념식을 우연히 시청하고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제주 4.3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추념식을 통해 나는 반성하고 깨달았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서 이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 생각했다.

교양 수업으로 제주인의 삶이 들어간 과목이란 과목은 다 찾아서 들었다. <제주 4.3의 역사적 이해>, <제주 해녀의 이해>, <재일제주인의 삶과 정신>의 강의를 수강했다. 종강하고서야 나는 4.3이 무엇인지, 제주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4.3의 아픔에 더욱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손가락 절단으로 인해 제주병원에 입원한 인선은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라고 말한다.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학보사 기자로 취재 차 故 양용찬 열사의 기림비 행사에 참여했을 때이다. (양용찬 열사는 보다 나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했던 본교 선배이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자잘하게 많이 다쳤다. 행사의 큐시트를 받아 읽는 중에 종이에 손가락이 베이고, 행사의 사진을 찍다 나뭇가지에 걸려 손등 위 피부에 상처가 났다. 당시 피가 날 때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지만, 상처가 마르고 故 양용찬 열사의 기림비 행사의 기사를 쓸 때쯤 상처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인선처럼 나의 상처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을 딛고 서 있나’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상처의 아픔은 너무나 별것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과 아픔이 제주에 있는 나를 받쳐 들고 있는가. 제주 4.3의 피해자들, 양용찬 열사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신과 가족과 세상과 작별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책 제목의 ‘작별’이라는 단어를 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 사진=조승주

'작별'로 말하는 작가의 메세지

작가는 제목의 ‘작별’을 통해 4.3과 현재 세대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내가 생각하는 이별과 작별의 차이점은 다시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이별은 어찌할 수 없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헤어짐이고, 작별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갈라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헤어짐이라 나는 정의했다. 제목에서 얘기하는 작별은 4.3 피해자들의 죽음으로, 우리 세대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헤어짐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책을 통해 이 ‘작별’을 부정한다. 우리는 제주 4.3에서 희생한 그들이 일군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과 작별한 것이 아니다. 즉, 그들과 우리 세대는 시간이 흘러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작가는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작별’에 초점을 맞추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제주 4.3에 있어 내가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제주 4.3은 우리와 작별해서는 안 된다. <조승주/2022 저널리즘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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