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난히 동물을 좋아했다. ‘어쩌면 전생에 동물이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동물을 사랑했다. 일요일 아침, 햇살이 살며시 눈꺼풀을 두드리면 코끼리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반쯤 열고 리모컨부터 손에 쥐어 TV를 틀었다. 

 바로 아침 9시 30분 시작하는 ‘TV 동물농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항상 ‘WHY? 동물’, ‘도전! 꼬마 애견 수의사’와 같은 동물 만화책을 읽고 컴퓨터로 새로운 동물 사진을 찾아보며 바탕화면을 바꾸는 게 취미였던 나에게 TV 동물농장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전국 곳곳, 심지어 해외의 동물 이야기까지도 나에게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어떤 날에는 늑대 탄생의 순간부터 늠름한 늑대가 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긴팔원숭이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며, 다른 날에는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이야기를 들려주어 강아지가 주인 품에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아직까지 내용을 기억할 정도로 나는 동물농장을 보고 또 봤다. 그만큼 동물 이야기는 들어도 질리지 않았고 말해도 항상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나의 대화 상대는 엄마, 아빠였다. 외동이었기에 집에서의 시간을 대부분 엄마, 아빠와 보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귀가 닳을 정도로 동물 이야기를 풀어냈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했다. 그런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결국 부모님은 나를 위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는 것을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키우던 강아지의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대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내 동생이 되었다.

 

출처: 송예슬


 대박이는 요크셔테리어 수컷으로 대박이가 4살 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품에 안겼다. 우리는 대박이가 새로운 집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 아직도 대박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다듬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분한 털, 그리고 그 위에 입은 꼬까옷. 조그마한 발로 어찌나 그렇게 빠르게 돌아다니던지! 

 마루 냄새를 킁킁 맡으며 걸어 다니는 대박이를 보는 나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강아지가 나타났다. 강아지가 나타난 후 내 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대박이를 보기 위해서 더 일찍 일어나고 종례 시간에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친구들보다 대박이랑 노는 게 더 재밌었다. 

 금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는 털 속에 파묻힌 까만 눈과 코는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고 나의 눈은 그걸 쫓기 바빴다. 하품하는 모습, 기분 좋아서 웃는 모습, 곤히 자는 모습, 오물오물 밥 먹는 모습, 어느 찰나의 모습도 놓치기 싫었다. 삶이 대박이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머지않아 핸드폰 갤러리도 대박이로 가득 찼다. 그렇게 대박이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박이의 시계에도 시간은 흘렀다. 벌써 14살이 되었다. 바삐 뛰어다니며 활기차게 산책했던 길도 이젠 풍경을 눈에 더 담으려는 듯 그 공간을 즐기며 느릿느릿 걸었다. 검은색이었던 털은 영롱한 은빛으로 변해갔다. 눈 위엔 안개가 덮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별처럼 빛났다. 천둥을 무서워했던 대박이에게 누가 귀마개를 씌웠는지 천둥이 쳐도 이젠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가족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던 대박이는 부쩍 잠이 많아져 이제 우리보다 늦게 일어난다. 활짝 웃으면 진주알같이 보였던 쌀알만 한 이빨들도 군데군데 탈출한 흔적이 보인다. 

 

출처: 송예슬


 항상 아기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을 줄만 알았던 대박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세월이 흘렀음을 느낀다. 갈수록 이별이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별은 항상 익숙하지 않다. 동물을 그렇게 사랑한 내가, 동물 중 가장 사랑한 대박이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건 더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대박이는 이미 나의 한 부분이 되었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 많이 성장했다. 대박이가 곁에 없는 상상만 해도 눈물부터 차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두 번 울고 끝날 사이가 아님을 안다. 서로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할 것이고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모든 순간이 뇌리에 남고 서로를 잊지 않아 우리의 이별에는 마침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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