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사랑을 위해 마음 쓰는 일


언론홍보학과 2020102104 서정현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

 

 무참한 폭력이 짓밟고 간 자리엔 남은 사람의 짓밟힌 마음이 있다. 누군가는 전부를 잃었다.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두려울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그들은 작별하지 않는다. 그 날과도, 그 이와도, 그 곳과도. 엄청난 고통이 덮칠지라도 그들은 결코 떠나보내지 않는다. 있는 힘껏 맞서고 또 맞선다. 

 

  지난 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내가 꽤 자라고 나니 낯을 가렸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쇠약해져가는 할머니를 보니 공포가 마음에 무겁게 부딪혔다. 현실이구나. 진료와 입원이 잦았다. 많은 약을 달고 살았으나 기적은 없었다. 끝은 조금의 더딤도 없이 빠르게 다가왔다. 
  병원이 싫다던 말씀에 시골에서 사촌언니와 함께 할머니를 간호하기로 했다. 마주한 할머니의 현실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보는 내내 괴롭고 힘들었다. 분명 예전과 다름없이 드라마를 보며 웃고 계셨는데 금세 힘겨운지 눈을 꾹 감고 계신다. 분명 방금까지 장난치며 김밥 재료들을 쏙 빼먹고 계셨는데 금세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 계신다. 이게 현실이었다. 할머니도 우리도 매일을 눈물로 보냈다. 
  할머니는 다시금 병원에 돌아가셨다. 남겨질 우리의 두려움 아마 그게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마음이 멍했다. 불과 며칠전의 기억도 전부 다 과거형이었다. 우리의 현재엔 할머니의 과거만 남았다. 그 때만 생각하면, 내가 이기적이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어떤 마음으로 할머니를 기억해야 하는가. 할머니를 떠올리면 왠지 고통스러워졌다. 당신을 기억하려면 아픔을 마주해야만 했다.

 

  4월 3일, 제주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무자비한 학살이 있었다. 폭력은 쉽게 이루어졌지만 그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억겁의 고통 속에서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을 들춰본다. 그 때를 떠올리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친다. 아픔을 들여다보아야하며, 슬픔을 인내해야만 한다. 이 과정을 버틸 수 있는 까닭은, 사랑인 것이다. 웬만한 사랑으론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극한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짓밟힌 마음은 지독한 고통을 이겨내 지극한 사랑으로 그들을 새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작별하지 않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왕 사는거 잘 살아야지.’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지만, 고통스러울지라도 기억하는 것. 이 방식 또한 그들이 사는 방식인 것이다. 남겨진 이들에게 잘 사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과거를 끊임없이 그려가며 사는 것, 그것이 그들이 작별하지 않는, 잘 사는 방식인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지극한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4.3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사랑이라니. 책은 남겨진 이들이 과거를 살펴보고 끊임없이 아파하는 태도에 집중한다. 


  책에서 인선은 3분에 한 번씩 바늘을 꽂아야만 했다. 피가 자꾸 나오는데도 바늘을 꽂아야만 했다. 통증을 느껴야 신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독하게 아프지만, 계속해서 찔러보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지독하게 아픈 과거는 있다. 끔찍하기도, 가슴이 절절해지기도 하는 과거가. 간혹 어떤 이들은 그 지독한 과거를 들추어본다. 남겨진 이들이 그렇다. 지독한 과거 속, 그들의 사랑했던 누군가가 있기에. 그들은 고통을 통해 고통을 견뎌낸다. 고통을 끌어안는 이들은 결코 고통과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기 위해서.  

 

<서정현/2022 저널리즘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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