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하의 꿈. / 사진=정수아
경하의 꿈. / 사진=정수아

경하의 꿈은 어둡고 무서웠다.

검은 통나무들이 누워있는 캄캄한 곳에 갑자기 물이 차오른다니.

계속 이런 꿈을 꾸던 경하는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간 병원에서 자신의 집에 있는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인선과 그녀의 어머니 정심의 가족사와 그들에게 얽혀있는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된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 나간 사람들 말이야.”

이 구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 대학에 오기 전 이 사건에 대해 들었던 건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런데 제주에 내려와 살다 보니 제주 사람들의 모든 삶에는 4‧3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3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제주 사람들이 품고 있는 4‧3의 아픔에 대해 모른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 이미지. / 출처=문학동네
책 '작별하지 않는다' 이미지. / 출처=문학동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바로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투쟁이다. 한강 작가의 꾹꾹 눌러쓴 문장들은 4‧3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울컥하게 했다.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서술된 4‧3은 읽는 내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특히,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오빠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들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자신의 일생을 바친 정심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상황을 만든 그때의 모든 결정자, 방관자들에게 분노가 일었다.

책을 읽고 제주 4‧3 사건에 대해 더 찾아봤다. 팔십을 넘긴 한 노인은 제주국제공항 활주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고 한다. 그곳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의 어머니가 누워있기 때문이었다. 활주로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몇십 년 동안 찾지 못했다는 그의 사연을 알고선 제주국제공항 4‧3 희생자 유해 발굴 사진을 찾아봤다.

제주 4‧3 사건도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조금 더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부끄러운 감정이 치솟았다. 아울러,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이 공감됐다.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작별하지 않는’ 제주 4‧3 사건과 얽혀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돼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도 이들의 삶을 깊게 알아보고 ‘작별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수아 / 2022 저널리즘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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