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2년째. 제주의 푸르른 언덕과 따뜻한 바람 속 짠 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바다는 날 항상 설레게 한다.

넓게 퍼져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동해, 밀물과 썰물의 매력에 헤어 나올 수 없는 서해는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힘든 적이 많았다. 이유 모를 웅장함에 압도당한 것일까?

반면, 제주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높디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바다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점차 푸르게 물들어간다. 건물의 층고는 점점 낮아지고, 여름을 반기는 초록의 잎사귀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다.

차임벨을 누르고 버스가 멈추길 기다린다. 가족, 친구와 같이 온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혼자 사색을 즐기러 오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정거장에 내려 조금 걸으니 하얀 모래알이 햇빛에 반짝이고, 시원한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을 멈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출렁이는 파도에 함께 떠내려간다.

여름밤, 곽지해수욕장. / 사진=정수아
여름밤, 곽지해수욕장. / 사진=정수아

반짝이던 모래알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잔물결이 점점 붉게 물들면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어둠이 드리워지는 것을 아는 듯 파도는 이전보다 더 힘찬 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친다.

여름밤, 이호테우해수욕장. / 사진=정수아
여름밤, 이호테우해수욕장. / 사진=정수아

내가 바다를 찾는 이유는 딱 하나, 파도 소리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어서다. 이렇게 머릿속을 비우고 나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이명이 들릴 때면 버티지 못하고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용기는 없어서, 그저 바다에 가서 파도 소리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긴 하지만, 결국엔 다 잘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겨서일까?

여름밤, 바다.

나를 저 밑바닥으로 몰아세우는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파란에 맞서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이겠지만, 파도에 모든 걸 맡기고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정수아 / 2022 저널리즘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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