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영문판 中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영문판 中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우리네 삶 속 불행의 기원을 아득히 훑으며 첫 구절을 시작한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소사회인 가족은 누군가에겐 단단한 버팀목이지만, 누군가에겐 일생을 뒤흔드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쉽사리 해방될 수 없는 관계이다. 가족이 한 덩어리로 묶이는 건 불문율과 같으므로, 불행을 나누어 메고서라도 함께 살아갈 뿐이다.


1.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것

우리 가족 역시 나름의 이유로 불행한 가정 중 하나이다. 나는 구태여 우리가 행복하노라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행복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지’하는 둥 완곡한 표현을 빌리고 싶지도 않다. 부모님 사이 감정의 골은 그곳에 고층 빌딩을 세워도 될 정도로 깊다. 어릴 땐 부모님이 싸우면 방 안에 누워서 눈물 찔끔 흘리며 잠자는 척을 했다. 그러나 머리가 큰 뒤로 나는 ‘내가 왜 이 꼴을 보고 살아야 하냐’는 불만을 감출 생각이 사라졌다.

식사시간이나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으레 벌어지는 부부 싸움에, 난 심판이 아닌 또 다른 쌈닭으로 출전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서 상대방의 가장 증오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고는 ‘네 엄마 혹은 아빠를 닮아서 네가 그 모양 그 꼴’이라고 화를 냈다. 배우자를 깎아내리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자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탁월한 발언이다. 그래, 사실은 맞는 말이다. 난 그들을 닮았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저 문장을 치가 떨리도록 싫어하는 이유는, 상대방과 나를 겹쳐보는 눈빛 위로 비치는 분노와 혐오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종종 “남들도 다 이만큼 다투며 산다”라고 기도하듯 얘기했다. 나의 유난스러움 내지 예민함을 그렇게 지적하곤 했다. 나는 도대체 남들이 뭔 상관인가 싶었다.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것이고 끝내는 것도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참고 사는 까닭’을 문밖에서 찾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같은 진창에 고여있는 이들을 통해 얻는 얄팍한 위로가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 있어선 우리의 삶이 가장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가족들과 따듯한 교훈이 담긴 책을 나눠 읽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특히 아빠에게 우리가 오래도록 공유해온 불행에 대해 터놓고 싶었다. 


2.
우리는 혈육입니까?

정용준 작가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혈연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이 책은 끔찍한 불행과 폭력의 고리에 올라타 있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파탄의 원흉인 아버지와 착취당하며 지워지는 어머니 또는 여성,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 등장한다. 불우한 울타리 안에서 자란 자식에게 남은 선택은 지독한 혈연을 끊어 없애거나, 죽어도 닮고 싶지 않았던 이와 닮아버린 얼굴을 하고 계속 살아내는 것이다.

그의 데뷔작인 「가나」를 기억한다. 「가나」는 내가 간직하고 싶은 책 중 한 권이다. 섬세하고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는 아름다움에 관해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사뭇 달랐다.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구렁텅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한편씩 읽어 나갈수록 활자에 묻어난 역한 절망감이 서사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고른 것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마치 아빠에게 “소설 속 아버지 상은 당신과 다를 바 없고, 난 당신이 정말이지 싫습니다.”라는 선언문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낸 기분이 들었다. 막상 아빠는 신경도 안 썼다. 대신에 평론과도 같은 감상평을 건네줬다. 글쟁이인 그에게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였다. 

아빠는 감각의 선단이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기적이고 또 한없이 무신경하다. 30평도 채 되지 않는 집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 8개가 그 반증이다. 우리 가족이 그놈의 책 때문에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책이 지겹다. 책을 보면 아빠가 연상되는 것이 당연해서 억울하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작가세요"라고 말하면,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선망을 보내왔다. “예술가” 타이틀은 그렇게도 강력하다. 곁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그의 아티스트적 에고가 감당이 안 될 뿐이었지만.

그 영향으로 무던했던 엄마는 불같이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 엄마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상상조차 못 하겠는데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만일 날 낳기 전에 부모님이 이혼했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겠지’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건 나를 상당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불행의 시초가 나라는 존재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예민함은 나를 답도 없는 고민에 매달리게 했다. 요즘은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엄마와 아빠는 왜 서로 끌렸는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지극히 순수한 호감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인생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깨달음마저 얻게 된다.

난시가 심한 엄마는 자연스럽게 이 독서 릴레이에서 열외였다. 그래서 난 오랜만에 동생에게 문자를 남겼다. 용건이 없으면 연락도 잘 안 하는 남매지간에, 뜬금없이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가장한 요구가 조금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착한 동생은 ‘대충 읽어도 뭐라 하지 말라’며 마지못해 기숙사 주소를 불러줬다. 이렇게만 보면 데면데면한 남매 같지만, 우린 단둘이서 여행도 다녀올 만큼 사이가 나쁘지 않다. 

반면 사춘기까지만 해도 우리는 매일같이 다투곤 했다. 나는 전형적으로 질투심 많은 첫째였기에, 내가 힘이 달리기 전까지는 동생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이 잘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동생에게 짜증을 느꼈다. 싸우지 말라고 싸움을 벌이는 나와 달리,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동생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왜 저 녀석은 나를 도와 가정의 평화에 힘쓰지 않는가’ 항상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형제는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둘 다 예민한 성정을 가졌으나, 스트레스를 받는 방향도 발산하는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걔는 자기의 내부를 태우며 삭이는 사람이다. 나와 동생의 다름을 이해한 뒤로 내게는 전우애 비슷한 게 생겼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불화가 그 어떤 것보다 재앙처럼 다가온다. 우린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지만, 물건이 날아가고 고성이 오가던 밤들과 알고 싶지 않았던 괴로운 진실들을 기억한다. 그러니 나와 내 동생은 무수한 전투를 함께 헤쳐온 동지인 것이다. 


3.
친절한 타인과 솔직한 무관심

자식 둘은 경기도 집을 떠나 지방으로 대학을 갔다. 현재 아빠까지 회사 근처로 나가 살게 되면서 집에는 엄마뿐이다. 15년가량 부대끼며 살아온 우리 집. 이제 가족들이 모일 기회는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밖에 없다. 그러나 심적으로 언제가 더 편안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네 가족 모두 ‘지금’이라고 답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서로를 불행으로 내몰던 가족의 경계를 반쯤 열어두기로 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한 처방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서로에게서 분리되는 것. 가까운 타인처럼 지내는 것.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우리는 타인이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가족이면서 왜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하는 딜레마는 여기에서 온다. 완벽히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기에, 우리가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끔 멀게만 느껴진다.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친절함을 베푸는 것이 오히려 더욱 쉬울 정도로 말이다. 이런 진솔함과 친절함은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지나친 관심과 이해에 대한 요구는 서로를 옥죌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혈육”이나 “가족”이라는 단어는 무섭게도 남발된다. 그 한마디로 용서와 면죄부를 강요한다. 용서할 수 없어서 상대의 상처를 후벼 파며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타인에게조차 발휘되는 상냥함을 곁에서 찾지 못하는 가족이라면, 멀어지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로부터 도망쳤을 때 보다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함께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고민에 나는 답을 내렸다. 어쩌면 우리는 혈육이 아니어야 한다. 낯선 눈길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더 나은 우리를 위해서.

<2021 출판문화실습 / 임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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