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내가 가족독서릴레이를 하게 됐는데 이게 뭐냐면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하는거야! 그래서 다 같이 읽을 책 골라야 돼서 상의하려고 전화했어!”

엄마: “에엥? 뭘 그런 걸 해 책 읽을 시간이 없는데..”

: “그래도 가족끼리 하는 거라 같이 해야 돼~ 엄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나 읽고 싶은 책 없어?”

엄마: “재미있는 건 모르겠는데 읽었던 책 중에는..”

: “응응 뭐 있어?”

엄마: “어린왕자 같은 책 해도 되나? 어린왕자를 엄마가 옛날에 읽었다가 결혼하고 너희 낳고 공부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그때 읽으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서 펑펑 운 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너가 와서 엄마 왜 우냐고 했는데.. 그땐 그 책이 그렇게 슬프더라. 이거 책도 집에 있을 걸?”

 

수화기 너머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한테 그럼 이걸로 하면 되겠다!’라고 말만 하면 되는데 왜 울컥해서 말이 안 나왔을까. 낯선 내 감정에 당황했지만 담담한 척하며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럼 이 책으로 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종료버튼을 누르고 정적이 찾아온 순간 내 마음을 속일 핑계를 생각했다.

이제 날이 추워지니까 괜히 별거 아닌 걸로도 울컥하나봐

나는 엄마가 눈물 없는 어른인 줄로만 알았다.

 

그날의 전화로 책을 골랐다. 엄마는 왜 어른이 되어서야 어린왕자를 읽고 울었는지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싶다는 마음이 책을 고르는 가장 큰 동기였고, 나아가 다른 가족들은 이 책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우선 나의 가족독서릴레이는 정석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서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니며 근로를 하다 보니 내 손으로 직접 가족들에게 책을 전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로 제주도에서 따로 책을 빌려서 읽고, 가족들은 청주에서 책을 같이 돌려 읽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읽고 난 책과 소감문을 동생에게 부탁해 택배로 전달받아 전달받은 책을 한 번 더 마지막주자로 읽으면서 릴레이독서는 마침표를 찍었다. 형식적으로는 딱딱해 보이는 과정의 가족독서릴레이였지만, 택배로 받은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소감문에서 가족들의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서 가족들이 서로 읽고 한 글자씩 소감문을 썼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의 어린왕자

: 나의 어린왕자는 사라져가는 동심이다

<어린 왕자>는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국내에서도 200여종의 단행본이 유통되고 있는 세계적으로 2억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될 만큼 전 세계의 모든 아이, 어른에게 울림을 주는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릴 적 나에게 어린왕자는 학교에서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였기에 책의 내용을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정말 어른들은 저런 생각일까?’, ‘그래서 어린왕자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임에도 가족독서릴레이를 하며 어린왕자를 다시 읽기 전까지 나에게는 그저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가족독서 릴레이의 첫 번째 주자이자 마지막 주자였다. 첫 번째 주자일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고, 가족들이 읽고 보내준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마지막주자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가족들의 소감을 읽기 전과 후 나의 감상은 차이가 생겼다. 우선 가족들의 소감을 읽기 전 독서활동에서는 분명히 같은 내용을 읽었지만 내용에 직접적으로 이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보내준 한 줄 평을 보고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니 아빠는 이 부분에서 순수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까?’, ‘동생이 말한 구절이 여기있네.’ 등 가족들의 생각에 이입해서 읽다보니 책을 다 읽은 후 인상 깊은 구절과 감상이 좀 더 명확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어린왕자>는 분명히 어릴 적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으니 처음 보는 책 같았다. 도입부에 바치는 헌사에서부터 어린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어린왕자가 만난 여러 행성의 어른들, 지구에서만난 어른들과 여우와 뱀, 어린왕자 행성의 장미, 그리고 상자 속 염소와 책의 화자 와의 대화까지 기억은 얼핏 나지만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흥은 전부 새것이었다. <어린왕자>는 프랑스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1943년 발표한 소설로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어린왕자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왕자는 사막에 도착하기까지 다양한 어른과 동물을 만나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린왕자가 출판된 지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어린왕자에서 묘사되는 어른의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 속이 보이지 않아 모자라고 하지만, 어린왕자는 단숨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이라고 말을 한다. 또한 책의 화자인 가 그려준 상자에서 자신이 원하던 양의 모습을 발견하며 소중히 다루곤 한다. 어린왕자의 이런 모습이 모든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가지고 있던 동심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내가 그 어른이 되어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지금처럼 마음속에서 어린왕자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영 볼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린왕자는 어른들의 사라져가는 동심이 아닐까?

 

잘 가. 이제 내가 비밀을 알려줄게.

그것은 아주 단순해. 무엇인가를 잘 보려면 오직 마음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출처: 어린왕자-

 

가족들의 어린왕자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모든 것을 같이했던 가족이기에 한권의 책을 같이 읽었을 때 느끼는 점이 어떻게 다를지가 기대가 됐다. 가족 독서 릴레이를 시작한 이후 가끔 하는 안부전화는 순수하게 안부를 묻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독서 진행상황을 떠보는 용도였다. 조급한 마음에 숙제 검사하는 심정으로 가족들의 독서 진행 현황을 물을 때면 가족들이 보내는 일상의 흐름에 내가 하나의 숙제를 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던 아빠, 엄마도, 공부하느라 바쁘다던 동생들도 어린왕자를 진심으로 읽어주었음에 가족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끈질기게 재촉해서 소감문을 받았을 때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렸던 택배를 받은 느낌이었다

 

: 아빠의 어린왕자는 순수함이다

우선 첫 번째 주자는 아빠였다. 아빠는 사람들은 어린왕자처럼 순수함을 갖고 살기가 쉽지 않다. 어린왕자처럼 순수함이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보다 한참 먼저 어른이 된 아빠에게는 순수함 보다는 당장에 보이는 이익, 위험이 더 중요해진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특히 결혼 이후 내가 태어나고 동생들도 뒤따라 세상에 나오면서 자식 셋을 둔 가장이 되며 어쩔 수 없이 순수함보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삶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 엄마의 어린왕자는 어린 시절의 회상이다

어떻게 보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책을 읽기 전부터 엄마의 소감이 궁금했다. 두 번째 주자인 엄마는 다양한 대상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새로웠고, 어렸을 때 느꼈을 듯 한 감정이 되살아 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라고 했다. 엄마가 어린왕자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눈물이 났던 건 어릴 적 어린왕자를 읽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창 대학 진학에 해야 될 쯤 대학을 꼭 다녀야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한테 나 그냥 대학 안가고 일 먼저 할까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질문에 엄마는 엄마의 엄마는 매일 바빠서 엄마가 초등학생 때부터 밥도 짓고 그랬어~ 그리고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간호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서 일찍 돈 벌러 나가서 그때부터 일을 했지. 그러다 아빠 만나고 너희 낳고 시간이 되면서 공부한 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너네도 꼭 대학에 가서 그때밖에 못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이 말에 엄마의 인생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고 지금도 이때 말해주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엄마의 소감문을 읽고 그때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엄마가 왜 어린왕자를 읽고 펑펑 울었는지에 대한 답이 살짝 보이는 것 같았다. 어린왕자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주는 코끝이 찡해지는 책이었던 것이다.

 

: 첫째 동생의 어린왕자는 자유로운 시선이다

세 번째 주자인 첫째 동생은 예전에 읽을 때는 어릴 적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여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며 어른들의 말에도 공감이 되었다. 어린왕자는 자유로운 생각과 시선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감상평을 듣고 니가 무슨 어른의 입장을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성인이 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나랑 3살 터울이라 마냥 애기로 봤는데 이제 어린왕자의 책 속 어린왕자보다 어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빠르게 흘러간 시간이 야속했다. 같이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아웅다웅 할 때는 빨리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고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동생들이 하나 둘 씩 어른이 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1-2년 정도는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자유로운 생각과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감상평에서 부쩍 커버린 첫째 동생이 이제 진짜 어른의 눈높이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져 안타까웠다. 이제 막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동생에게 어린왕자는 어른이 되어도 자유로운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동생의 어린왕자는 소중함이다

마지막 주자인 둘째동생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이 대사를 읽고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 내가 정말 중요시해야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사실 둘째 동생은 이제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이기에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읽고 감상평을 써달라고 한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감상평의 내용처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느꼈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음에 담을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마음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는 둘째 동생에게 어린왕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과 아직 친해지지 못한 나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 조차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기회에 하나의 책을 가족끼리 읽고 감상평을 나눌 수 있었기에  책과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몰랐던 나의 생각, 아빠의 생각, 엄마의 생각, 동생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이번 가족독서릴레이를 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점은 내가 생각보다 가족에 대해 오랜시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가족독서릴레이는 책을 읽기 전에서부터 읽고 난 후 가족들의 감상평을 듣기까지 '가족들은 어떤부분이 인상깊었을까', '지금쯤이면 안부전화 겸 진행상황좀 물어볼까?', '엄마, 아빠는 이런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바쁠텐데 책을 다들 열심히 읽었네'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값진 경험을 통해 정말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가족들로부터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가족끼리 독서릴레이를 한다면 서로의 생각과 시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어른들에게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줄 <어린왕자>의 독서 또는 재독서를 추천하며 가족독서 릴레이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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