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와 <크루엘라> 등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이은 개봉으로 극장가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제주 도내 영화관들 역시 상업영화로 스크린을 채우고 열심히 노를 젓는 중이다. 그러나 상업영화 위주의 상영작 구성으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독립예술영화가 제주 관객들을 좀처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1월에서 4월 사이 도내 영화관 상영점유율을 0.1% 이상 기록한 영화는 127편이었다. 상업작품이 64편, 독립예술작품이 63편으로 개수는 비등하다. 그런데 실제로 상영된 비율은 상업영화가 77%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위 수치대로라면 제주 극장에서 개봉한 독립예술영화들은 몇몇 인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스치듯 상영되고 마는 것이다. 상업영화가 수많은 스크린과 상영시간을 차지하는 동안, 독립예술영화끼리 얼마 남지도 않은 파이를 나눠 먹는 꼴이다.

도내 영화관들은 모두 일반 상영관뿐이라서 해당 문제를 개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제주도에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020년을 기준으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전국에 총 50개가 존재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관의 다양성 영화 전용관이나, 영화진흥위원회 및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전용관을 포함하면 결과는 75개로 늘어난다. 0개로 집계된 전남과 전북에도 목포 시네마 라운지 MM과 전주 지프떼끄가 운영되고 있다. 반면 제주에서는 정말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표 값이 나날이 치솟는 가운데 제주도 거주민들의 영화 선택지는 단출하다. 현재 도내에는 7개의 영화관이 있다. 그러나 최근 개관한 ‘한림 작은영화관’을 빼고는 전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다. 작은영화관의 경우, 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일반 영화를 상영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다양성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나머지 영화관 6곳 중, 비교적 상영 테이블을 폭넓게 구성해왔던 메가박스 제주점이 지난 5월부로 기약 없는 휴관에 돌입했다. 따라서 관객들의 선택권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제주도 관객들은 어디로 가야 독립예술영화를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답해 줄 한 제주 청년을 만나보았다.

 

“지상의 밤”에서 영화 한 편 어때요?
제주시청 근처에 위치한 작당연구소. 이곳은 커뮤니티 시네마 <지상의 밤>을 운영하고 있는 임지호 씨가 머무는 사무실이다. 남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각종 영화 포스터로 꾸며진 벽이 눈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문화기획자 임지호라고 소개한 그는, <지상의 밤>은 영화를 기반으로 제주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가 왜 다른 곳도 아닌 ‘제주’에서 ‘독립예술’ 영화를 상영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하다.

커뮤니티 시네마 "지상의 밤" 기획자 임지호 씨 
커뮤니티 시네마 "지상의 밤" 기획자 임지호 씨 

“영화는 제가 모르는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영화를 볼수록 저는 더 다양한 삶을 경험하는 것이죠.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제주에는 멀티플렉스와 같은 커다란 영화관만 있는데, 이런 영화관에서는 주로 대기업이 투자한 소수의 영화만 상영하고 있어요. 소자본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의 경우 상영할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제주도의 관객들은 작고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접할 기회가 부족해요. 이런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느껴서, 직접 상영회를 진행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19년도 겨울에 독립예술영화관 탐방을 떠났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 운영진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며, 지역에서 극장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관객이 주체가 되는 영상문화인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지상의 밤>이 탄생한 것이다. 그럼 <지상의 밤>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까?

“첫 상영회에서는 <로렌스 애니웨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제주지역에서 연극을 하는 신한빈 연출가님이 프랑스 영화 연출에 대한 큐레이션을 진행했고,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의 초상화 전시를 유경림 작가님과 함께했어요. 두 번째 상영회는 클럽 '낮과 밤'이라는 인디 라이브 바에서 <소공녀>를 상영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밴드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김은영 님이 영화 내용과 관련된 자작곡을 공연했습니다. 세 번째 상영회에서는 같은 작품 <소공녀>로 온라인 영화모임을 열었어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직접 만나기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온라인을 통해 제주를 포함한 전국의 관객들과 감상을 나누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상의 밤" 의 지난 회차 프로그램 사진  (자료제공: 지상의 밤)
"지상의 밤" 의 지난 회차 프로그램 사진  (자료제공: 지상의 밤)

<지상의 밤> 프로젝트는 영화 상영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작품이 가진 내적, 외적 스토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주의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부대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은 영화를 본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적 체험을 이어나가고, 감상을 확장시킨다. 이로써 <지상의 밤>은 복합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 대중들은 독립예술영화, 그러니까 다양성 영화를 어렵다고 생각해요.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거죠. 저는 다양성 영화를 상영할 때, 일반 영화관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영화관이 좋은 시설을 기반으로 관객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 이용자 맞춤형 큐레이션을 제공한다면, <지상의 밤> 프로젝트는 현장감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획한 게 복합문화예술 프로그램입니다. 관객들은 상영회에 와서 단지 영화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영화의 분위기를 다층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현장감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쉼 없이 달려왔던 <지상의 밤>은 올해 “영화 처방”이라는 프로젝트로 제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영화 처방은 지역주민들의 사연을 모집하고, 사연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 주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서 코로나 블루를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편의 영화라는 위로가 닿기를 소망한다고 전하며, 그는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현재까지 <지상의 밤>은 영화라는 장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요. 하지만 앞으로는 영화를 넘어서 전방위 독립문화예술에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인과 새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요. 더 나아가서는 마을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독립예술영화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성장해 온 <지상의 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제주도 영화 마니아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달래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미래를 꿈꾸며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제주의 다채로운 독립문화예술 조성을 위해 <지상의 밤>은 계속해서 깊어 올 것이다.

<2021 신문제작실습 / 임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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