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리 해변
월정리 해변

◈ 제주의 핫플레이스 월정리 

람의 짠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바다와 모래는 보석을 숨긴 듯 반짝거린다. 이 곳은 월정리(月汀),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월정은 ‘달이 머무는 자리’라는 의미다. 또한 해안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반달 모양이 나온다고 해서 월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의미에서 보나 이름에서부터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메랄드빛 바다와 백사장이 돋보이는 마을의 아름다움 탓에 월정리는 최근 몇 년 사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관광지로 각인돼있다. 하루 평균 4000~5000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최근 제주시가 20억 예산을 들여 월정리 해변을 지정해수욕장으로 선정한 사실은 그 인기를 입증한

이러한 월정리의 인기는 약 10년 전 월정 어느 한 카페의 SNS를 통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0년 마을의 유일한 카페였던 아일랜드 조르바(지금은 없음)는 홍보를 위해 SNS 계정에 마을의 해변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진 속 해변은 ‘에메랄드빛 바다‘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는 곧 월정리 열풍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관광객들은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관광 수요가 생긴 마을을 개발자들이 외면할리 없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에는 개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0년 전 카페 하나 있던 월정리 해안가 앞거리는 현재 많은 차량과 건물, 관광객들로 즐비하다 (좌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러브벨의 사랑스런 이야기')
10년 전 카페 하나 있던 월정리 해안가 앞거리는 현재 많은 차량과 건물, 관광객들로 즐비하다 (좌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러브벨의 사랑스런 이야기')

◈ 월정리의 변신은 진행중

지역 개발 열풍은 10년간 월정리에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한적하고 고요했던 해안가 앞 거리는 무수히 많은 카페와 건물들로 가득 찼다. 타지역 사업자들에게 몰려드는 관광객은 곧 예비 손님과 다름없었다. 외지인 투자자들은 당시 낮았던 땅값을 웃돈을 주고 사면서 거리에 무차별적으로 건물들을 지었다. 성공을 바라는 많은 자영업자들 또한 제주로 몰려들어 건물주에게 세를 내며 건물들의 한 칸을 차지했다.

그렇게 해안가 앞 풍경이 급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던 바다에는 카누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던 도로에는 주차 차량들이 줄지어 섰다. 거리 앞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은 흰색 모래사장에 검은색 그늘을 지게 했다. 

또한, 관광객을 포함한 전체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부동산이 폭등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정리 5XX단지(위치 : 월정리 해안가 인근)의 공시지가(토지의 단위면적당 가격)는 2011년 15,500(원/㎡)에 비해 2021년 1,165,000(원/㎡)으로 약 75배 정도 뛴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시세를 고려하면 월정리의 땅값은 이보다 몇 배 더 뛰었을 것으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월정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실가격이 평당 1000만원 정도를 호가하고 있고, 지금은 매물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고 한다. 

◈ 이 작은 마을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외지인 사업자들은 사업의 영역을 요식업으로만 제한하지 않았다. 그들은 숙박이 필요한 관광객들을 위해 대규모 게스트 하우스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장기 사업을 위해 마을의 ‘이주민’이 되기로 결심했다. 주민등록상 월정리 주민이 된 것이다. 이는 원래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 즉 ‘원주민’들을 사업자들이 대체하게 된 셈이다. 이에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땅 혹은 집을 웃돈을 주고 사 그들의 터전을 차지하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제주의 한 작은 마을에 퍼지게 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상인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의 정의이고, 요즘은 사회적 의미로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의 이주민들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 많은 월정리 이주민들이 금전적 혹은 다양한 이유로 마을을 떠나갔다.

“수리한 집들은 다 팔아분 집, 아니한 집들은 본토배길껀디 거의 어서. 다 어디 사람들인지 난 몰라. 몬딱 다 타지 사람들. 이제 두석이네 집 위로 해내 영숙이네 집하고만 본토배기주. 나머진 다 타지 사럼”

평생을 월정리에만 거주하고 계신 김 할머니(89)의 말이다. 쓸쓸함으로 형언할 수 없는 말이다. 기존의 사람들이 떠나갔다는 것은, 그 사람들과 함께 하던 할머니의 삶도 변했다는 것을 말한다. 작은 밭에서 농사하는 일밖에 하지 않던 할머니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원주민들과, 또 마을과 함께 삶을 버텨가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도 다양했다

여러 원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갔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이 다르듯이, 그들 개개인의 사정도, 마을을 떠난 이유도 다양했다.

사실 개발 열풍 전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비슷비슷했다. 개발 전 주민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농업’과 ‘어업’에 한정돼 있었다. 마을의 방문객은 주민들의 지인이 전부였고, 당연히 음식 숙박업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저 골목길 중간에 있는 낡은 슈퍼 하나와, 해안가 인근에서 작업을 끝낸 어부들을 위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을 뿐, 다른 가게는 전무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주민 중 어부나 해녀 말고는 전부 밭농사를 지어 도매상에게 파는 일을 했고, 주로 마늘과 당근을 많이 재배했다고 한다.

A씨(69)도 여타 주민들과 비슷하게 당근 농사를 짓는 마을의 원주민이었다. 그는 6년 전 외지인에게 웃돈을 받고 자신의 농지를 팔아 이사를 갔다. 그는 “백날 농사지어도 돈도 안 되고게.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될건디, 물가는 점점 더 비싸지고. 막막해난게, 걱정되고”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마을의 개발과 지역 농업의 활성화는 별개의 문제였다. 관광객들이 월정리를 구경 와서 그들의 당근을 살 리는 없었다. 물가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책임져야 했던 그로서는 농사의 한계를 느낀 것이다.

“농사해봐도 별로고 이 돈으로 타지에 장사라도 허는게 더 낫겠다 싶엉 겅 핸 그냥 팔아분거지. 겅핸 제주시와네 살암서”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과 비슷한 경우로 마을을 떠난 사례가 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의 속사정을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

한편, 대부분의 시골촌 풍경이 그렇듯, 개발 전 마을의 주 구성원은 노년층이었다. 노년층이 아닌 경우,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중년층과 그들의 자식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마을의 개발이 시작되고, 그 시점이 노부모가 별세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중년층이 마을을 떠나게 된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B씨(55)와 C씨(63)가 비슷한 케이스다.

B씨는 개발 전 마을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별세하고 개발이 시작되자, 그녀는 농사를 짓는 대신 외지인에게 집을 빌려주고 마을을 떠났다. 그녀는 현재 임대료를 받으면서 제주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땅값은 오르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인데, 팔기는 좀 그렇고, 겅 하는디 이제 외지사람이 찾아완. 까페허켄 빌려주랜. 허난 빌려줬주게. 경 빌려 거기 수리핸 장사기고 돈 조금씩 받으멍 겅 하고있는거지”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C씨는 원주민이었지만 직장 때문에 개발 몇 년 전부터 타 지역으로 넘어와 살고 있었다. 개발이 시작되고 부모님이 별세한 후, 그는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아 집을 갖고 있다가 7년 전 외지인에게 팔았다. 그는 “처음엔 물려받아시난 가졍 있잰 했쥬. 지금은 직장 때문에 여기 제주시 나왕 살고 있쥬마는 은퇴하고 나믄 고향에 돌아강 농사지으멍 겅 살잰도 해서”라며 당시를 회상하고 “경헌디 땅값이 그츄륵 올르난 게난 확 팔아부렀주게. 목돈 좀 챙길 수 있는 기횐디 그거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이시카핸”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20년 전 월정리 원주민
20년 전 월정리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젠트리피케이션 

그들이 떠난 이유를 들으며 단순히 “돈이 좋았네”라고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막중한 의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로 인해 마을의 물가와 땅값이 오르고, 그로 인해 마을 안에서 농업 외 다른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그들은 생계의 책임을 갖고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당연히 ‘고향에 대한 사랑’보다 소중해야 함이 맞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결정인 것이다. 이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결정들은 곧 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이어졌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문제점은 다양하다. 물가 상승, 임대료 증가, 거주비용 증가, 자영업자 이주민과 건물주간의 갈등... 대다수의 기사들은 이러한 점들을 지적하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문제점을 '경제적 피해'로 인식한다. 단순히 원주민이 마을을 떠나는 것은 앞선 이유들에 비하면 가벼이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개발을 통해 이뤄지는 마을의 경제 활성화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마을의 원주민은 그 지역의 주체다. 원주민이 떠나간다는 것은, 마을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과 같다. 또한 공동체의 파괴는 곧 그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던 삶의 흔적, 습관, 문화, 전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이젠 그들이 함께 모여 돼지를 잡던 날도, 바다에서 보말을 따 옹기종기 모여 삶아먹던 날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젠 거기가 내 고향 아니라게”

뿔뿔히 흩어진 주민들.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켠에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터전을 찾아가도 낯선 관광객들만 보인다. 월정리는 최근 몇 년간 쉴 새 없이 변신해왔다. 그 변신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럼 월정리 주민들은. 누군가는 이 해답을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신문제작실습2021/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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