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약수터 표식
지구별 약수터 표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양의 플라스틱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한때 인류가 발명한 가장 획기적인 물질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한 번 생산된 플라스틱은 그 수명을 다하기까지 무려 500년이란 시간이 소요되기에, 재사용·재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일회용이라는 인식이 강해 쉽게 버려지고, 다른 물질과 섞이거나 오염물이 묻어 재활용이 어렵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은 매립되거나 소각되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포화상태가 되어 다른 쓰레기와 섞여서 무분별하게 쌓이거나,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잘게 부서져서 5mm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미세플라스틱은 각종 소금, 섬유유연제뿐만 아니라 수돗물, 일회용 생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서도 검출된다.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무심코 플라스틱을 사용하기엔 그 후에 치를 대가가 너무 크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물건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플라스틱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은 없어도, 물건을 사면 자연스럽게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수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라서 소비를 줄이기도 힘들다.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기에 물을 사지만, 그 물을 담은 페트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생수를 사면서 생수병을 함께 소비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도 어렵다.

지구별 약수터 팸플릿
지구별 약수터 팸플릿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해결방법이 있듯 여기에 그 방법을 제안하는 곳이 있느니, 바로 ‘지구별 약수터’다. ‘지구별 약수터’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사는 대신 개인 컵이나 병에 물을 받아먹는 캠페인이다. 생수병 소비로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기획됐다. 개인 컵(텀블러)만 있다면 누구나 ‘지구별 약수터’로 지정된 식당, 카페 등 제주도 내 90여 곳의 협력 공간에서 자유롭게 식수를 담아갈 수 있다. 

지구별 약수터 팸플릿을 이용해 직접 지구별 약수터를 찾아가 봤다. 기자는 제주공항에서 지구별 약수터 팸플릿을 찾을 수 있었다. 팸플릿에 적힌 내용을 따라서 개인 컵(텀블러)을 준비하고, 지구별 약수터의 위치를 검색했다. 약수터 위치는 구글맵 링크(https://bit.ly/2YRTuAF)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아일랜드팩토리 풍류'에 준비된 정수기
'아일랜드팩토리 풍류'에 준비된 정수기

그렇게 찾아간 곳은 ‘아일랜드팩토리 풍류’다. 아일랜드팩토리 풍류에 들어가면, 작은 정수기 옆에 지구별 약수터 스티커가 붙어있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음료를 구매하지 않고 정수기를 사용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을뿐더러 정수기가 따로 있어서, 편한 마음으로 물을 담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불편했던 점은 정수기가 작아서 긴 텀블러에 물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덕에(?) 사장님과 짧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일랜드팩토리 풍류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단골손님의 추천으로 지구별 약수터가 됐다. 카페에서 물을 제공하는 건 어렵지 않고, 취지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정수기를 직접 사용하기 어렵다는 기자의 말에는 “가게 정수기는 가게 컵에 맞게 돼 있어서 조금 작을 수 있다. 텀블러에 담기 불편하다면 직원분께 직접 담아달라고 부탁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지구별 약수터를 이용하는 손님이 많은지에 대한 물음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라며 “아직 지구별 약수터 이용객이 많지 않다. 이것저것 준비해 둔 것에 비해서 사용하지 못한 게 아쉽다”라고 했다. 앞으로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은 계속 지구별 약수터를 운영하고 싶다며, 지구별 약수터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이 방문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했다.

지구별 약수터, 작은 것이 아름답다(JAGA) 이경아 대표, 사진 제공: 이경아 대표
지구별 약수터, 작은 것이 아름답다(JAGA) 이경아 대표, 사진 제공: 이경아 대표

# “쉽고, 재밌게 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목소리가 더 컸죠."

지구별 약수터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금 덥기도 춥기도 한 5월의 어느 날, 아라동의 한 카페에서 지구별 약수터 이경아 대표를 만났다.

지구별 약수터를 기획한 이경아 대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JAGA)’라는 환경단체를 운영 중이다. 환경 보호를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던 중 제주시에서 리빙랩 프로젝트를 모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지원했다고 한다. “지구별 약수터는 2019년 봄에 시작한 프로젝트에요. 제주시에서 리빙랩 프로젝트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감 날에 급하게(웃음) 지원하게 됐죠. 제주시의 지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됐고, 행정상으로는 수눌어지구 ‘우물랩’ 프로젝트로 불리고 있어요.”

생수를 사 먹지 않고 기존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했다. 분명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거나, 다른 프로젝트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자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모티브가 됐던 다른 프로젝트는 없었어요. 평소에 고민하던 생수병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카페를 약수터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고, 삼다수와 함께하고자 했으나 이런저런 문제로 쉽게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턱을 낮추고자 카페로 접근을 시도하게 됐죠.”

대부분의 시작이 그렇듯, 지구별 약수터의 시작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업에게 거절을 당하고, 주위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지구별 약수터가)좋은 프로젝트 같긴 한데, 어떤 사장님이 참여하려 할까?’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사장님을 설득하는 것보다 물을 받으러 매장에 들어가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죠. 지금도 역시 그 부분이 가장 어렵게 다가오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구별 약수터에서 물을 담는 모습
지구별 약수터에서 물을 담는 모습

#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갈 생각이에요.”

“엄청 바빴어요. 발에 불이 나게 돌아다녔죠. 지구별 약수터를 확보하려고 제주도 전체를 다 돌아다닌 것 같아요. ‘지구별 약수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참여하실래요?’라고 하면서 말이죠. 거절당하는 게 익숙해질 때쯤, 하나둘씩 프로젝트의 취지에 관심을 두고 참여해주시는 사장님이 생겼어요.”

인터뷰하던 중에도 지구별 약수터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이경아 대표. 직접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모집하러 다니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많아져서 뿌듯하다고 한다. 이제 제주시뿐만 아니라 서귀포시에도 지구별 약수터가 생기는 중이라면서 기대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주시에 많은 지구별 약수터가 있지만, 가장 많은 이용객이 있는 지구별 약수터가 따로 있냐는 질문에는 “현재 약수터 개수보다 약수터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바닷가 근처 카페나 올레길 주변 카페에서는 지구별 약수터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어요. 혹은 카페 안에 적힌 지구별 약수터 스티커를 보고, 그 스티커에 궁금증을 갖고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대요. 사장님이 지구별 약수터에 관해 설명하면, 취지가 좋은 것 같다고 하면서 물을 받아 가는 손님도 있다고 해요.”라고 답했다. 

작년까지는 지구별 약수터의 개수를 늘리는 게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약수터 프로젝트 자체를 확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지구별 약수터로 등록된 곳은 많으나, 그에 비해 이용객은 적기 때문이다. "사장님들이랑 가끔 연락하면 ‘저희 지금 프로젝트 하는 거 맞죠?’라는 말을 들을 때가 종종 있어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별 약수터 확보에 성공해서, 이제는 약수터를 이용하는 이용객을 늘리고 싶어요.” 

# "정말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죠. 전 올해가 정말 기대돼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기보다 가진 거로 소소하게 꾸려나갈 예정이다. 첫 시작부터 약수터 캠페인은 원래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갈 생각이라고 한다. “진짜로 원하는 사람들이 와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욱 캠페인다운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향, 우리가 할 수 있는 속도, 우리가 주체가 되어 지구별 약수터를 이끌자는 것이 팀의 목표예요.”

지구별 약수터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구별 토끼, 지구별 키즈, 지구별 플로깅 등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인터뷰 당시 지구별 약수터 챌린저를 모집 중이었는데, 특히 지구별 약수터 챌린저를 구분하는 이름이 독특하고 귀여웠다. 현재는 챌린저 모집 종료 후 활동 중이다. 챌린저 이름에는 불편하고 힘든 환경실천일지라도 재미있는 요소를 더하고자 한 이경아 대표의  기획 의도가 담겨있다. 

“챌린저 단계를 5단계로 세분화해 ‘지구별댕댕이, 지구별고양이, 지구별집사 등’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다양한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고, 재미를 더하고자 했죠. 그나저나 챌린저 이름이 귀엽다고 해주니 고맙네요. (웃음) 재미있게 진행하고자 이름을 지었으나, 너무 장난스러워 보인다는 말도 들어서 챌린저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랜 고민 끝에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론을 내렸어요. 환경적인 실천은 불편을 감소해야 하고, 힘든 부분을 이겨내야 하니까 작은 것 하나로도 재미를 주자는 기획 의도를 나타낸 부분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6월에는 현재 진행 중인 챌린지를 잘 마무리하고, 7월에는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가을에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챌린지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거든요. 그래서 탄소발자국 관련한 챌린지를 구상하고 있어요. 이것도 재밌게 진행하고 싶어요. 지금 하는 플로깅도 꾸준히 진행할 거예요. 정말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죠. 전 올해가 정말 기대돼요.”

# “부끄럽거나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요?”

지구별 약수터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특별한 색을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올해가 지나면 정확한 색이나 특징이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아직 특별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이 뚜렷하게 역할이 있으면서도 참여의 턱이 낮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지구별 약수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별 약수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면, 그게 부끄럽거나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요?”

“2050년이 되면 지구에서 거주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인식하면서도 아직은 그리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지구를 위해, 모두가 함께하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캠페인의 진정한 취지는 일상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지구별 약수터를 통해 개인의 작은 발자국이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큰 연결고리가 되어, 플라스틱 없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2021 신문제작실습 / 이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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