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을동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4.3 유적지 조감도
곤을동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4.3 유적지 조감도

곤을동은 제주시 화북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며 곤흘동이라고도 불린다. ‘물이 고여있는 땅’이라는 뜻을 품은 곤을동은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4.3 사건의 피해로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직접 방문한 곤을동의 첫인상은 고요했다. 큰 도로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가는 길에 돌담 뒤로 피어있는 돈나무 꽃향기가 마스크 너머로 느껴졌다. 흐린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푸릇푸릇한 식물들과 푸르른 바다가 아름답게 맞아주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좁은 돌담길을 지나 4.3 유적지 푯말이 보인다. 푯말에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곤을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4.3 유적지 조감도가 세워져 있다.

4.3 유적지인 곤을동 역사가 적힌 푯말
4.3 유적지인 곤을동 역사가 적힌 푯말

제주 4.3 사건은 무장대의 무력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중산간 마을 가옥의 약 95%가 불에 타 사라졌으며 곤을동은 초토화된 몇 안 되는 해안마을 중 하나다. 중산간지역의 피해가 컸던 와중에 해안 마을인 곤을동에서도 학살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마을로 들어온 군인들은 곤을동 집 곳곳을 수색했다. 곤을동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군인에게 이끌려 화북 국민학교에 갇혔다. 또 일부는 바닷가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이후 곤을동 마을 전체가 불태워졌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주변 마을로 옮겨졌고 불태워진 빈 집터는 현재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 4.3사건 이후에도 복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은 약 100개소에 달한다.

부서진 돌담과 폐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곤을동 또한 한참을 복구하지 못했는데, 올레길과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최근 해바라기, 코스모스 밭이 조성되었다. 4.3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곤을동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푯말과 조감도 사이를 지나 본격적으로 마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보았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모습이었다. 산책로 옆으로는 한때 집터였던 빈 땅들이 보였다. 집터를 구분 짓는 돌담에는 눈 내린 듯 넝쿨이 무성하게 뒤덮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긴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이 무심하게도 닿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불태워진 이후 아직까지 비어있는 집터들
불태워진 이후 아직까지 비어있는 집터들

산책로 오른편으로 보이는 바닷가와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올라가 보았다. 길을 걷던 도중 쓰레기를 줍고 있는 두 남녀를 마주쳤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이들이었다. 용기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둘은 모자 지간으로 올레길을 다니며 쓰레기 줍는 활동을 취미로 하고 있었고, 곤을동에 도착해 푯말을 보고 나서야 이곳이 4.3 유적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비록 올레길 때문에 왔지만 4.3사건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돼서 다른 올레길에서 보다 더 의미 있는 활동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방문했다가 잃어버린 마을에 대해 기억하고 돌아간다는 그들의 선한 행동에 더운 날씨에도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잠깐의 대화가 끝난 후 계속해서 산책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의 왼쪽에 위치한 길로 올라가면 올레길 18코스로 이어진다. ‘해안절경’푯말이 가리키는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아름답게 펼쳐진 해안절경 속에서 ‘안드렁물’을 볼 수 있다. 우선 ‘안드렁물’을 보기 위해 오른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하자 드높이 펼쳐진 해안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길의 끝자락에 계단식 우물이 보였다. 바로 옆에는 우물을 설명하는 푯말이 서 있었다. 푯말을 읽어보니 이곳도 마을 주민들의 흔적이 담긴 곳이었다.

‘안드렁물’은 곤을동 마을 주민들이 식수와 허드렛물, 빨래물로 사용하던 3단 우물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던 우물이었지만 지금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 한때 식수로 사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얕게 고인 물에는 흙과 낙엽이 떠다니고 있었다.

안드렁물
곤을동 주민들이 사용하던 우물 "안드렁물"

안드렁물을 살펴본 후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갈림길의 왼쪽 길로 들어섰다. 나무가 무성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토끼풀이 가득 피어있는 공터가 나온다. 각종 운동기구와 바닷가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꽤 보였다. 운동 중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50대 여성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10년 넘게 곤을동 근처로 운동하러 자주 온다"며 "곤을동은 늘 한적해서 거의 다 운동하는 중년들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사진 찍으러 오는 젊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것도 아주 가끔일 뿐"이라며 한적한 곤을동의 모습을 설명했다. 조심스럽게 곤을동의 4.3에 관련해서도 알고 있는지 물어보자 당연히 알고 있지만 방문할 때마다 매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아니라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넓지 않은 마을인 곤을동을 모두 살펴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산책로를 둘러보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을을 꼼꼼히 둘러보는 와중에도 마주치는 사람이 몇 없을 정도로 마을은 고요함을 지키고 있었다.

지인인 이 모씨에게 곤을동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그게 무엇이냐고 되물어왔다. 불에 탄 마을이 복구되지 못하고 유적지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생각보다 4.3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며 놀라움과 착잡한 마음을 내보였다.

4.3사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어떻게 복구되고 있는지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잃어버린 마을에 담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음과 더불어 마을의 활기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도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잃어버린 마을이 그때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잃어버린 마을에도, 고요한 곤을동의 빈 집터에도 포근한 시선이 내릴 차례다. <2021 신문제작실습 / 이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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