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의 공통점이 뭘까? 

<가족독서릴레이> 과제를 처음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우선 우리 가족은 모두 B형. 하지만 좋아하는 것, 성향, 성격, 가치관, 꿈 모두 달랐다. 문득 어렸을 적 아빠 차를 배에 싣고 떠났던 남도 여행이 생각났다. 담양, 목포, 여수, 경주 등 우리나라의 남쪽을 아빠는 운전을 하고 엄마는 옆자리에서 지도를 보며 돌아다녔던 추억이 아직도 나에게는 행복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전 올해 1월에 할머니까지 함께 다녀왔던 ‘경주’ 여행 역시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을 공통점으로 떠올렸다. 

 

올해 1월, 함께 다녀온 경주에서 찍은 가족사진
올해 1월, 함께 다녀온 경주에서 찍은 가족사진

 

 

정정심 작가님의  '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 
정정심 작가님의  '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 

여행과 관련한 베스트셀러는 많았다. 하나의 책을 염두에 두고 서점을 갔지만 다른 책을 구입했다. ‘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 제목에 있는 ‘기차여행’이라는 단어와 표지에 그려진 지도는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마침 책의 저자인 정정심 작가님은 엄마와 나이가 비슷했다. 학교 과제 때문에 책을 가족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말에 내심 부담을 느꼈던 엄마를 떠올리며 바로 이 책을 선정했다.

 

정정심 작가님은 코레일 태백역에서 철도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현재는 풍기역 부역장으로 근무 중이다. 매일 기차를 보고, 기차 타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40대 후반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은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는게 쉽지 않으셨다고 한다. 오랜 꿈이었던 ‘기차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남기는 일’을 이루기 위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혼자서 떠난 기차여행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우리 가족은 책에 나온 많은 기차역들 중 가고 싶은 곳이나 기억에 남는 곳을 각자 한 곳씩 선정해보기로 했다.

 

#1. 아빠의 부산역
제일 먼저 아빠가 책을 읽었다. 책을 드린지 하루 만에 아빠는 “딸의 부탁은 미룰 수 없다”며 긴 감상문과 함께 책을 가져오셨다. 스무 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을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부산항을 처음 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빠는 부산역을 골랐다. 하루의 여유가 있어 찾아간 남포동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낯선 경상도 사투리를 보고 마냥 신기해하며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데 스무 살 때 처음 친구들과 서울을 갔을 때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더 나아가 아빠는 새벽경매를 하는 자갈치시장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생선의 종류를 물어봤는데 “진짜 몰라서 묻는거냐?”며 면박을 주는 대목을 읽으며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오래 일해오며 직장생활에 상식처럼 알고 있는 사항을 일반인은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나는 잘 알고 있는 사항이더라도 상대방은 전혀 모를 수 있기에 늘 처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고객을 대해야 한다”는 대목을 공직 생활에 금과옥조로 삼고 싶다고 전했다. 

 

#2. 엄마의 목포역

“엄마가 딱 좋아할 것 같아서 (책을) 골랐어” 두 번째로 책을 전달한 엄마에게는 먼저 책을 선정했던 이유를 말씀드렸다. “그래도 책이 좀 두꺼운데?”라며 엄마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지만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열심히 책을 읽어주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한 목포 여행이 생각나서 목포역을 선정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힘들었을 무렵, 퇴근하고 오신 아빠가 무작정 목포로 가는 배를 타자며 이끌었고 엄마는 버리려던 쓰레기도 다 버리지 못한 채로 목포행 배에 올랐다고 한다. 

그때 목포에서 큰 위로를 받고 왔던 탓일까. 엄마는 작가님의 목포 이야기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엄마도 아빠와 마찬가지로 여행이라면 함께 하는 여행만 생각하다가, 작가님의 글을 보며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훈훈한 마을의 정을 느끼며 여행하는 모습과 본인의 옛 추억을 되돌아보고, 즐기면서 여유를 느끼는 모습이 책 너머로도 와닿아 떠나고 싶은 충동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3. 나의 희방사역

친구와 함께 작년 여름 기차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단양, 경주, 순천, 여수로 이어지는 코스를 배낭 하나 메고 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단양에서 내 생의 첫 도전,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순간이다. 날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을 잔뜩 갖고 있었는데 날고 나니 단양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롯이 패러글라이딩만 하기 위해 찾았던 단양이지만 제주도에서는 볼 수 없는 굽이굽이 이어진 산의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 단양 옆에는 책을 읽고 내가 가장 가고 싶어진 ‘희방사역’이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희방사역 주변은 사과꽃으로 하얗게 물든다. 과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작가님 역시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역을 꼽으라면 희방사역을 꼭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고 하신다. 책에 그려진 희방사역의 모습을 보며 다가올 내년의 봄의 모습이 그려졌다. 희방사역은 조만간 문을 닫는다. 열차의 복선화 공사가 마무리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계획이라고 한다. 책이 아니였으면 영영 몰랐을 희방사역,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가보리라는 목표가 생겼다.

 

#4. 남동생의 전주역

네 번째 순서는 육지로 대학을 가게 되어 혼자 서울에 사는 남동생. 동생 역시 코로나가 심해지며 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마침 집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동생에게 책을 전해주었다. 전공 수업에서 진행하는 과제라고 하니 “전공수업이면 당연히 중요하지. 같은 대학생의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볼게”라며 자신 있게 책을 가져갔다. 의외로 동생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전주역을 가고 싶은 역으로 선택했다. 

전주역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을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책 속 전주역에는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에서의 에피소드가 나와 있었다. 동생은 “국내여행도 마음껏 못하는 시기에 책으로나마 여행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 시국이 하루빨리 정리돼서 원래는 일상이었던 여행을 소소하게 떠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라며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전주로 향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와 달리 동생은 무엇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의외로 단순하게 가고 싶은 역을 선정한 모습을 보며 괜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5. 여동생의 경주역

여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앞서 말했던 우리 가족이 남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다섯 살 밖에 안됐던 막둥이다. 동생은 올해 초에 다녀왔던 경주 여행이 기억에 남아서 경주역을 선정했다. 동생은 평소에는 해외여행을 꼭 가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나라만의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와닿았고, 해외여행도 좋지만 국내를 먼저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다녀간 곳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신 것처럼 그림을 그리며 여행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은 늘 펜과 종이가 담긴 가방을 챙겼다. 작은 몸에 큰 가방을 들고 다녀서인지 가끔은 짐이 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제사 때는 사촌 동생들의 모습을 그려주기도 하고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며 그림으로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꿈을 잃지 않고 최근에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전시하며 멋있는 미술학도로 성장하고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행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들으며 대견하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남도여행, 경주 여행에 이어 우리 가족은 세 번째 국내여행을 했다. 기차 대신 책을 타고 떠난 국내여행. 책을 읽으며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우리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비록 엄마와 아빠는 혼자 여행을 꿈꾼다고 했지만 여전히 막무가내인 큰 딸은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가족들과 함께 국내 기차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책처럼 나중에는 우리 가족의 기차 여행기가 담긴 책을 만들어 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2020 출판문화실습/ 언론홍보학과 4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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