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무드셀라 증후군과 페인트

모든 것이 잊혀 간다. 살아가는 삶이 아닌 버텨내는 삶으로 달력을 가득 채웠고, 방황의 종착역을 알지 못해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정거소에서도 내릴 수 없었다. 그날의 추위와 빈부격차에서 오는 박탈감은 나침반의 방향 감각을 상실케 했다. 빙하기 시대를 굳건히 견뎌낸 초창기 인류는 그날의 추위와 빈곤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무드셀라(노아의 할아버지)는 969살까지 살았던 인물로 장수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좋은 기억만 떠올렸다. 이러한 모습에 빗대어 “추억은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해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심리”를 ‘무드셀라 증후군’이라 칭한다. 보통 안정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퇴행 심리를 뜻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우리 가족의 힘들었던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되고 있다.

페인트, 이희영, 창비
페인트, 이희영, 창비

내가 소개할 ‘페인트’라는 책은 이희영 작가의 작품으로 2018년에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상상 속 아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부모가 낳은 아이를 직접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그 아이를 데려와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 센터’에 보낸다. 이를 줄여서 ‘NC센터’라고 한다. 센터는 출생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가 존속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지어졌다. 작품은 이 센터에서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 ‘제누301’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 친구들은 사회에서 사용하는 이름 대신 센터만의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는다. 센터에 들어온 달별로 이름이 정해졌는데, 만약 1월에 센터에 오면 ‘January’의 앞 세 글자를 따 남자는 ‘제누’로, 여자는 ‘제니’로 지어졌다. 그다음 이름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순서대로 숫자가 붙여진다. 나와 내 친형을 극 중 이름에 대입하면 형은 5월에 태어났으니 ‘메우101’이 되겠고, 나는 형의 7년 터울이자 아기가 많이 태어나는 6월생이므로 ‘준750’ 정도가 되겠다. 여기서 길러진 아이들은 바깥세상 아이들과 달리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3차에 걸친 부모 면접을 통해 가족 계약이 체결되면 센터의 아이들은 ID카드에서 출신 기록을 삭제하고 정상적인 바깥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Part2. 메우101, 과거로부터 정지해야 미래로 갈 수 있다.

이 책을 메우101에게 전했을 당시, 그는 내가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다면 돈 많은 부모를 선택하면 되겠네”라고 소리쳤고, 그 한마디는 우리가 동일한 유전자 아래 태어난 친형제라는 것을 증명했다. 앞서 내비쳤듯 우리 가족은 돈에 얽힌 사연이 많다. 돈에 얽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우리는 특히 더 각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가족 사업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구성원 전체가 돈에 대한 경건주의에 빠져들게 됐다. 그로부터 평생을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해 살았으며, 우리는 날마다 비정기적인 집회를 통해 돈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갔다.

메우101은 뜨문뜨문한 내 어린 시절 기억보다 뚜렷하게 풍족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을 광산 캐는 게임의 캐릭터처럼 목표를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다. 그가 목표하는 직업도 우연치 않게 돈과 관련한 금융업종이다. 그의 노력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작아진 나의 신앙심을 다시금 고취시키는 행동인 동시에 그깟 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정지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불안했기 때문에 명확한 목표 없이 질주했고, 그로 인해 정지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씨앗이 꽃피우는 힘이 정지하는 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족릴레이 감상평
가족릴레이 감상평

 

Part3. 현실판 김하나의 굽혀지지 않는 손

책에서는 부모 면접이란 투박한 단어 대신 “페인트 하러 간다”라는 말로 바꿔 사용했다. 페인트의 의미는 센터 출신이라는 사실을 물감으로 지워 버리고 싶은 의도와 자신의 미래를 원하는 색깔로 물들이고 싶은 의도가 섞여 있다. 즉 각기 다른 색이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과정을 뜻한다. 또 책에서는 부모 면접자들을 ‘프리포스터’라고 불렀다. 그중 주인공과 주인공의 프리포스터로 등장하는 예비 부모 ‘김하나(모)’와 ‘이해오름(부)’의 페인트 장면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은 무엇인지'를 재고하게 했다. 반면 내가 주목한 것은 ‘내 부모가 나와 페인트를 한다면 합격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현실판 김하나 씨는 학교 가르침과 이접적인 교육을 했다. 나는 학창 시절 눈에 띄는 행동 없이도 주위에 항상 친구들이 몰렸다. 매년 작성되는 생활기록부를 확인해도 언제나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친화력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김 씨는 친구를 두루 사귀라는 학교 교육과는 반대로 친구를 줄이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가 친구를 사귐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페인트에서 명확한 감점 처리 대상이다.

나는 물질주의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낙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그의 부탁을 무시했다. 학교 점심시간마다 입맛에 안 맞는 메뉴가 나올 때면 그의 근심을 저편에 숨겨 두고 친구들과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철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의 교우관계까지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의 부탁보다 중요한 것이 동창생들과 의리였기 때문에 매주 한 번 정도 우리집 부엌은 난장판이 됐다. 결국 그는 자식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에 체념했고, 친구들과 안온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항상 라면을 상자째로 구비해 놨다.

김하나 씨는 자식 건강에 무책임하다는 점에서도 큰 감점을 받아 마땅했다. 10년 전 야구를 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손을 부딪쳐 엄지손가락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자 병원에 가야겠다고 김 씨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데려가기는커녕 가벼운 타박상으로 진단해 파스를 처방했다. 이것은 병원비를 아끼기 위한 자가 치료였다. 그의 오진단의 결과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 오는 날이면 엄지의 뻐근함을 느끼고 있다.

고질병이 된 손을 바라볼 때면 나는 김 씨를 원망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병원비 아끼는 게 자식의 건강보다 중요했는지 등 얼음 조각같이 날카로운 말을 면전에 토해냈다. 한참 그러고 나면 속에 쌓였던 억울함이 식혀지는 듯 통쾌를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김 씨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그의 손은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희생을 치렀으며, 손가락 열 마디 하나하나가 빳빳하게 굳어 접히지도 펴지지도 않을 만큼 낡게 닳아 있었다.

김하나의 손
김하나의 손

 

Part4. 이해오름의 맹목적인 사랑

현실판 이해오름 씨는 미련하다. 그는 물질적 풍요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기 위해 운전기사를 자처했다. 보슬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직접 데리러 오거나 목적지까지 태워줬다. 또한 퇴근 후 자식들과 집에 같이 가기 위해 자식의 공부나 업무가 늦게 끝나더라도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투철한 봉사 정신에도 메우101과 준750은 단 한 번도 감사의 말을 건넨 적 없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우리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맹목적인 사랑은 너무나 미련하기에 페인트에서 절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내가 중학생 때 일이다. 이른 나이에 친구의 권유와 더불어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댔다. 순조롭게 얻은 첫 수익은 곧 도박 중독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는 모아뒀던 돈까지 몽땅 날리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도박 중독에서 바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금을 마련하고자 소중하게 다뤘던 게임 아이템을 팔기도 했고, 이 씨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다.

승산 없는 노름에 미쳐버린 나머지 현실 세계의 나를 잊게 됐다. 그날의 배팅 결과에 따라 하루 기분이 결정됐고, 파산하는 날이면 극도로 예민한 신경을 사방에 표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죽어가는 나를 지켜본 것은 이해오름이였다. 그는 절망에 빠진 내게 원금과 비슷한 금액을 건넸다. 다시 한번 해보라는 뜻이었다. 대체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도박을 부추길 수 있는가? 그의 선택은 어떤 심리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계기로 인해 지저분한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미련했다. 담배와 술을 달고 사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의 표상이지만 사랑의 방식만큼은 다른 아버지들과 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올레길을 걷는 기행문 과제가 있었다. 육십을 향해가는 나이에 눈에 보이도록 심해진 관절염 증상을 보고 있자니 기행을 제안한 교수가 미웠다. 하지만 이 씨는 묵묵히 걸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그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거리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졌다. 나는 인증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돌아와 그의 뒤를 보조했다. 뒤에서 본 절뚝이는 걸음걸이와 늘어진 주름, 좁아진 어깨는 맹목적인 사랑의 폐해를 낱낱이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독서 릴레이로서 그의 미련함은 깨졌다. 독서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였던 그는 시력 악화로 글자가 안 보이는 현상을 호소했다. 덕분에 ‘독서 릴레이 완주’ 목표를 깔끔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가 또다시 미련하게 과제를 수행할 것 같아 내심 불안했는데 조기 포기는 서로에게 호혜적인 결정이 됐다. 한편 오늘 밤도 소주잔을 털어낼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걱정이 앞선다. 그의 거뭇해진 핏줄에도 따듯한 사랑이 흐르겠지.

 

Part5. 페인트 결과 보고서

작품 중 어린 꼬마 ‘아키’와 그의 프리포스터로 등장하는 한 노부부의 페인트 장면은 내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들은 부자였다. 아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사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아키에게 끝없는 관심을 표현했다. 할아버지는 아키의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자 윈드보드를 연습했고, 할머니도 페인트 결과를 기다리며 아키의 옷을 미리 사놨다. 그들이 아키에게 보내는 끝없는 관심과 그들이 준 풍요 속에 산다면 세상은 언제나 맑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현실판 김하나와 이해오름은 자식 건강에 무책임했고, 자식이 친구 사귀는 것조차 돈이 들까 봐 두려워했다. 또한 그들의 양육 방식은 자신들 몸에 밴 노동 방식처럼 무모했고 미련했다. 가난이란 죄의식에 갇혀 남들보다 몇 배는 바쁘게 살았으며, 그로 인해 자식에게 제대로 된 관심조차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들을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고, 저들과는 다른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살았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변덕스럽고 비연속적인 날씨 속에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세상이 이어진 것이다. 그들의 미련한 사랑 방식과 혹독한 노동의 대가는 메이101과 준750에게 겸손과 배려, 그리고 인내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는 어쩌면 21세기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 없는 덕목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뒤떨어진 가르침은 마치 옷장에 있는 헌 옷처럼 주름 폈고 먼지 쌓여 낡았다. 또한 그들의 가르침은 헌 옷과 같아서 익숙한 듯 포근했고, 자체만으로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어 어느새 내 몸에 깊게 배었다.

가난한 삶은 곧 돈이라는 신에게 영혼 뺏긴 삶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신은 가족의 사랑까지 앗아가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잊혀 간다. 살아가는 삶이 아닌 버텨내는 삶으로 달력을 가득 채웠고, 방황의 종착역을 알지 못해 우리는 어떤 정거소에서도 내릴 수 없었다. 그날의 추위와 빈부격차에서 오는 박탈감은 나침반의 방향 감각을 상실케 했다. 빙하기 시대를 굳건히 견뎌낸 초창기 인류도 그날의 추위와 빈곤의 고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상기했을까. 잊힘과 동시에 좋은 기억만 피어오른다. 창피의 대상이었던 20년을 버텨준 애물단지 자동차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말없이 머금어준 이젠 낡아버린 집도, 매일 돈 때문에 생긴 갈등으로 집 밖에 퍼진 고성들까지도. 그 참혹했던 비극들이 희극으로 다시 쓰여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과의 페인트에서 합격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다짐한다. 20년이 넘었던 방황의 날들을 반으로 접어 10년 안에 성공을 선물하겠다. 그리고 그때 물어보겠다. 나는 몇 점짜리 자식이었습니까.

메우101과 준750의 가족사진
메우101과 준750의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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