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각자 다른 농도로 각자 치열하게 살아간다. 크게 보면 국민이, 사회가 그렇고 작게 보면 내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그러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그렇다.

  어머니와 아버지 당신들이 걸어온 삶을 나는 잘 모르고,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따뜻하게 뭉친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다른 사람들은 이 <고도>를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연예인들에게는 <고도>가 대중들이 주는 사랑과 인기일 수도 있겠고, 공부만 하는 학생은 <고도>가 원하는 대학일수도, 평생 농사만 지었던 농부는 <고도>가 수확의 기쁨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은 이 <고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했다.

 

  맹목적인 기다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긴장감 없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고도>는 무엇일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참 정의하기 힘든 이 작품 속에서 우리 가족이 느끼는 감정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독서 릴레이는 생각할 이야기들을 참 많이 남겼다. 참 허무한 내용의 책이었음에도 할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아버지의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평소에는 몰랐던 어머니의 철학적 소양, 동생의 고민들, 그리고 코로나-19와 우리의 이야기까지, 우리 가족 4명의 4가지 <고도>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한다.

 

 

 

아버지의  ( 손 ) 을 기다리며

지나고나니 이제 보이는 것들.

 

  젊었을 적 허무주의에 빠져 지내던 시절,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국민 학교 입학 즈음부터 대학 시절까지 기독교인이었고, 한국 신학 대학을 목표로 하기도 하였던 나의 치기어린 방황이 자리잡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니힐리즘이었다. 이 작품도 당시 손에 잡았던 기억이 있어 그때의 감정을 상기해보며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겼다. <고도>라는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등장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대화와 그 가운데 스며든 허무주의적 색체는 나를 그 나무 앞에 함께 세운 듯 하였다.

  대학 시절 읽었을 때에는 이런 생각을 못해봤던 것 같은데, 딱 세월이 흘러 깊어진 주름살 정도의 깊이로 다시 보니 나는 그곳에 함께 있었다. 가난과 방황, 사실상 포기했어야했던 대학 졸업장, 그럼에도 한켠에 간직했던 뜨거운 학구열의 사이에서 나는 어쩌면 도피처를 찾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나 또한 무의미한 기다림을 겪었고 내일이 오면 조금 나아지겠지. 내가 신을 믿었던 만큼의 구원은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그래, 내가 블라디미르이자 에스트라공이었다.

  정신없이 치열하게 버티고 살아오다보니 지금의 나는 여느 중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않다. 성공했다는 말도,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모습도 들어보지, 보여주지 않은 그런 삶 말이다. 아이들이 이제 내 손을 떠날 때가 되고 보니 비로소 늙어가는 재미를 찾게 되었다. 젊었을 적처럼 패기 넘치고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그런 용기는 없을지라도 조그마한 여유와 내가 겪어온 풍파들이 안주거리가 되어 작은 술상을 차린 듯한 감정이 든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며 들었던 두 번째 감정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기다리다보면 그게 당신들이 찾았던 것은 아닐지라도 무언가 손에 잡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당장의 학업에 스트레스 받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겹쳐 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들과 같아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왔기에 튼튼한 밧줄 대신, 따뜻한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나에게 <고도>이다.

 

 

 

어머니의  ( 내일 ) 을 기다리며

이대로 지나보내기엔 아쉽잖아.

 

  언젠가 아이들 아버지가 우리의 30, 40대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참 많이 뿌듯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쓰렸던 감정이 든 적이 있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며 우리 부부 사이에 정했던 약속들을 지금까지 지키면서도 한 번도 불평해본 적 없는 우리가 참으로 대견스럽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커카는 모습만 바라봤던 나에게, 둘째를 낳고 건강 관리 차원에서 시작했던 수영이 이제는 함께 수영하는 언니들, 동생들과 여행도 다니고 모임도 가지고 하면서 자리를 비워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젠 내 손길이 점점 필요가 없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아들이 가져온 책을 읽어보는 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부분은 남편한테 물어가며 읽으면서도 그래서 <고도>가 뭔데? 하는 궁금증이 가시지를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난다. 남편은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야. 하는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통에 고구마만 계속 먹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고도>는 계속 내일 온다고하니, 사실 <고도>내일이 아닐까? 였다. 의미없는 생산 활동과 모순된 등장인물들, 소통이 안되는 대화 뒤에 찾아오는 내일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무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 모으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부딪히고, 어떤 대화도 그리 매끄럽지 않은 지금 현실의 축약판 같다고나 할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목적없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렇게 견뎌왔다.

  그럼에도 내일은 언제나 찾아왔다. ‘내일내일도 찾아왔고 그 날의 내일도 필연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래, <고도>는 항상 나를 찾아왔지만 그것이 나는 <고도>인 줄 몰랐던 셈이다. 그렇게 갈망하는 내일이 왔음에도 어제와 같은 삶을 억지로 이어 하염없이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찌 부조리하고 모순되지 아니할까. 나도 이제야 내일을 사는 기쁨을 맛보는 사람이기에 오늘도 내일을 기다린다.

나에게 <고도>내일이다.

 

 

 

동생의  ( 불안 ) 을 기다리며

모르는걸 안다고 할 수 없기에.

 

  나는 내가 무얼하고 싶은지 참 모르겠다. 컴퓨터가 좋아 프로그래밍을 배워보기도했고 잠시 농구도 해봤지만, 당장 다가오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중압감이 나를 눌러서인지 몰라도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형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하고, 어머니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하는 애매한 위치에서 그렇게 고등학교 2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 마음에서 읽게된 이 책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나에겐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고도>가 어찌보면 내가 찾아해매는 먼 훗날의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하염없이 <고도>를 단지 기다리기만한다. 그러다 이야기가 끝난다. <고도>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은 <고도>를 왜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채 말이다. 난생 처음 읽어본 책의 형태에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형이 왜 <고도>가 뭔지 찾지 말고 너가 느끼는 <고도>는 뭔지 생각하면서 읽어보라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고도>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었다. 아무것도 아니면 이들은 어떡하지? 만약 <고도>가 둘의 죽음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했었고 실제로 그런 뉘앙스가 풍기기도 하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고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지 싶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몰라서 해매는 것도 그렇고, 훗날의 나의 모습이 쉬이 그려지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까닭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어딘가 불안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소름이 돋았다. 모르는걸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서 모른채로 보내고있는 나의 학교 생활이, 영원한 무지로 끝날까 조금은 두렵다.

나에게 <고도>불안이다.

 

 

 

나의  ( 봄 ) 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답답한 마스크 속 세상이 어연 1년 째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도 이젠 무뎌져 나에게 안경과도 같은 정도 수준의 용품이 되었다. 과연 이 응어리진 답답함들이 끝나는 날이 올까. 곧 마스크를 벋고 마음껏 모여 앉아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참다보니 어느새 한 해가 지나간다. 불과 1년 전 콘서트장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음악을 즐기던 모습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공기를 마음껏 즐기던 모습들, 한강 둔치에 자리 잡아 낭만과 청춘을 즐기던 모습들을 동경하는 우리들은 모두 <고도를 기다리며> 속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인 것 같다. 잃어가는 것들을 붙잡을 수도, 더 나은 내일이 있을거라 희망을 걸어보는 일도 공허한 울림 속에 메아리치며 사라지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 적당히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렇게 지나보낼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책의 가장 첫 대사이면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고도>를 기다려야하지만, 이제는 왜 기다리는지도 잊어버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두마디 주고 받으며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않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새겨보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줄여가는 일. 그러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이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목을 메면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도>가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내일 <고도>가 드디어 나타나 기다림을 끝낼지도 모르는 애매한 결말 속에 지쳐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나도 그만큼 지쳐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할까. 다 잘될거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거야.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최선이 아닌 차악의 방책들로 억지로 묶어낸 발걸음들이 이젠 정말 무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언제나 그래왔듯이 해답을 찾아 이겨내리라. 막연한 기대 속에 오늘도 또 을 기다린다.

나에게 <고도>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같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도 느끼는 감정들, 와닿는 대목들, <고도>의 정체까지 정말 달랐다. 비단 이 책 뿐이 아니라 어떤 책을 쥐어도 살아온 삶,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이 다시 책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들에게 책을 권했을 때도 한줄 평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 하였고, 음성으로 듣는 것이 감정을 옮겨 적는데 좋을 것 같아 한줄 평을 쓰는 대신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느끼는 <고도>가 무엇인지 직접 말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버지의 삶과 경험, 어머니의 새로운 인생, 동생의 사춘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모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만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완성됐다. 내 역할은 단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만들고, 다듬고, 다시 가족들과 돌려보는 일이었다. 모든 생각을 글에 담지는 못했지만 어느때보다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참 소중한 시간이었고, 책 한 권으로 서로의 몰랐던 모습들을 나눠보고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들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에 참 감사해하는 시간이었다. 걱정도 많았고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막막한 마음도 있었지만 진솔한 이야기들 덕에 힘든 시기 속 더욱 끈끈하게 우리 가족을 지탱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어렵사리 첫 발을 뗀 가족 독서 릴레이니만큼, 더욱 의미있는 작품들을 선정해 다시 한 번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아보고싶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을 잡고 동생의 (불안)을 덜어 어머니의 (내일), 나의 ()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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