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와서는 좋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목표했던 것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었고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즐기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행복했다. 여름이면 바다에 들어가 스노쿨링과 낚시를 했고 봄가을에는 알록달록한 꽃구경을 하러 거리상관없이 동서남북을 돌아다녔고 겨울에는 흰 눈이 펼쳐진 설산에 올라 하얀세상을 만끽했다. 내게는 자연이 곧 즐거움이었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 찾아왔다. 혼자 남겨진 엄마가 걱정돼 여기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엄마가 “나때문에 오는 거라면 오지말라며 너가 목표하던 것들이 남아있다면 계속 해보라”는 말씀에 제주에 남기로 결심했다. 불쑥 찾아오는 슬픔에는 오름에 올라 뻥뚫린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바닷가를 걸으며 상념들을 떨쳐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않은 우리 가족은 남은 세 식구들끼리 숲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바다를 보는 시간을 제주에서 자주 가졌다. 그렇게 자연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자연에게 보답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학교신문사 기자활동을 하면서 교내 기숙사, 화장실 쓰레기부터 바다정화활동, 오름의 훼손 실태 등 환경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 다뤘고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공모전에도 재활용쓰레기를 주제로 참가하며 나름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조금씩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가족독서릴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 과제를 통해 가족들과 제로웨이스트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먼저 친환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가족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우선 책을 정독하며 실천 가능한 것들을 먼저 하기로 했다.  작가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해외여행 중 우연한 계기로 제로웨이스트를 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상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하는 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거창하고 하기 어려운 일인줄 알았던 것이 읽고나서는 평범한 사람도 실천 할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작가는 책을 유쾌하고 친근하게 풀어냈다.

책을 덮고나서 주방 선반 구석에 있는 텀블러를 먼저 씻었다.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장바구니도 신발장 한 켠에 처박힌 곳에서 꺼냈다. 세제와 샴푸 등을 친환경비누로 바꿨고 물을 좋아해 한 달이면 산더미 처럼 쌓였던 삼다수 페트병도 브리타정수기로 대체했다. 코로나로 포장용기가 늘었다는 뉴스가 많아졌지만 내가 사는 곳이 동쪽 시골마을이라 배달업체가 많이 없어 다행이 포장용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가족들에게 같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보자고 말해도될 것 같아 과제를 핑계삼아 책을 전달했다. 동생은 군생활로 멀리 떨어져 지내 참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엄마와 여자친구를 가족독서릴레이 주자로 선정했다. 책과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지 못해 거절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지만 두 사람은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자신을 제외하고 가족과제를 한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전해 들은 동생은 서운한 마음을 애둘러 표현했다. 내 생각이 짧았었나 보다. 책과 함께 감귤 한 박스를 보내며 동생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달했다.(동생아 미안해)

                      책을 읽고 나서 구입한 친환경 제품들(천연수세미, 장바구니, 텀블러, 천연비누, 샴푸바, 브리타정수기)
                      책을 읽고 나서 구입한 친환경 제품들(천연수세미, 장바구니, 텀블러, 천연비누, 샴푸바, 브리타정수기)

그렇게 책은 제주에서 출발해 의정부를 거쳐 파주로 전달됐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책을 받자마자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글에 눈시울이 붉혀졌다가 카톡으로 텀블러랑 장바구니를 들며 환하게 웃는 셀카를 보낸 엄마의 사진에 금새 웃음이 났다. 동생은 동료군인들에게 텀블러를 선물해줬다는 소식을 전해줬고 여자친구는 친환경 수세미를 내게 선물로 줬다. 릴레이를 마치고 세 주자에게 받은 소감을 SNS에 올렸다. 우연히 그걸 본 저자는 자신의 SNS에 리트윗하며 훈훈한 소식을 전달해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나도 작가님 덕분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지도, 환경운동가도 아니지만 책을 전달하면서 가족들에게 나도 환경을 위해 이렇게 노력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싶었다. 반드시, 잘 해야하는 노력이 아닌 꾸준하게 나아지는 모습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이번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나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과제가 끝나고 엄마, 동생, 여자친구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 지 궁금해졌고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멀어진 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시작해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지인들에게 까지 널리 퍼져 조금 번거롭더라도 자연에 무해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자연이 점점 더 훼손되고 파괴되는 지금 이 순간, 더 늦기 전에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보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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