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집안의 기둥이다.’, ‘네가 이끌어야 한다.’ 지금까지 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의도치 않게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집안의 어른들께서 만나실 때마다 앉히고 하시던 말씀을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께 대들기도 하고 어른들이 저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자리를 슬며시 피하는 재주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  J. D. 샐린저 (민음사)

가족 독서 릴레이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선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내가 우리 집이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파수꾼 역할을 하시며 외롭게 가정을 지켜오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랑스러운 기둥이 되어야겠다는 나름의 다짐이었다. 직접 말씀드리기는 조금 부끄럽고 낯간지러운 말을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겐 수업의 기말 과제를 작성하기 위해 꼭 읽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작중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모든 일에 불만이 많았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콜필드가 지키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의 세계로 나타나는 순수의 세계다.

발표 당시 금서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 소설은 한 청춘의 방황과 일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설 내용 전체가 콜필드가 퇴학을 당한 뒤 방황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속 그의 사고와 어투, 시선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과 어른들의 위선을 볼 수 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pp. 229. ~ pp. 230.)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자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마구잡이로 살아오던 콜필드를 다시 보게끔 만드는 대사이며 비로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발하는 부분이다.

내용은 방황하던 콜필드에게 피비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고, 그가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답변을 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 부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전까지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릴레이를 마치고 그 부분에 대한 대화를 나눴을 때, 부모님은 너랑 똑같은 애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너랑 똑같은 애의 뜻은 나로선 동의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이어진 대화에서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세상에 처음 나와 하얀 도화지 같은 마음에 검은 칠이 시작되어 혼란을 겪는 모습이라고 하셨다. 식사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깊게 묻지는 않았지만, 어떤 뜻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부모님은 내가 인문학도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취업의 길이 좁고 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나는 하얀 도화지였다. 도화지는 대학에 진학해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하고, 버티며 검은 칠이 시작되었다. 그저 인문학이 재미있고 관심 있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점점 현실을 바라보고 물질적으로 변하는 것이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식사를 마친 후 방에 돌아와 내린 결론은 내가 아버지의 파수꾼 자리를 물려받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과거 아버지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를 나에게 건네주신 적이 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에 받아 읽어본 책은 괜한 반항심을 키웠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읽은 책은 없다. <출판문화실습> 강의를 듣기 전 가족독서릴레이는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이 읽으실 시간이 있을까?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등의 생각이 길었다. 결국 시도했고, 완주가 빠듯하게 끝나긴 했지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한 줄 서평
한 줄 서평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말, 해주고 싶은 말을 속에 담아두고 끙끙거릴 때가 있다. 처음으로 해보는 말,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드는 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는 집에서 애교 있는 아들이 아니기에 더욱 말하기 어려웠다.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힌트를 남겨야 했다.

 

책에 남긴 메모

 

내가 이번 독서릴레이에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콜필드는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릴레이 주자들에게 호밀밭은 무엇이고 어린애들은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해 이런 메모를 남겼다. 다행히도 의미를 알아차려 주셨고,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없이 가깝게 느껴지는 가족. 당신은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고, 가족은 당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하고 싶지만 속으로 삼킨 말과 다짐을 책으로 대신해보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내가 남긴 힌트를 누군가 유추해내고, 그 내용을 나누는 것은 누구나와 할 수 있다. 하지만 몰랐던 가족에 대해 더욱 깊게 알아 가고, 돈독해지는 것은 가족과 함께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가족독서릴레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이 머뭇거리는 지금, 가족을 더욱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20출판문화실습/신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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