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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평화의 마을 조천읍, 그 안의 里를 만나다조천읍의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
강민정 | 승인 2020.06.25 09:38
제주 조천읍 북촌리 4.3 길

# 조천읍의 ‘오늘’

“‘조천읍’ 하면 사람 손 때를 타지 않은것 같은 특유의 마을 분위기가 떠오르는 것 같고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좋아서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요새는 소박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좋아 할 마을이죠 사실.” 조천읍 신촌리, 그 중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는 카페에서 만난 관광객의 이야기다.

도시의 소음 속, 쳇바퀴와 같은 일상의 반복을 살던 사람들은 한적하고 조용하면서도 ‘힐링’이 끊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조천읍으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조천읍은 오늘날 제주에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도민들에게 특색있는 마을로 주목받고 있다.

sns에 ‘조천읍’을 검색 해 보자. 많은 게시물과 연관검색어 중 단연 일등은 ‘조천 카페’, 그리고 ‘조천 서점’이다. 조천읍 대흘리와 와산리에는 조용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을 벗 삼은 아기자기한 카페 그리고 각각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는 독립 서점들이 많다. 앉아만 있어도 사색에 빠지기 쉬운, 자연과 함께하는 듯한 조천읍만의 분위기를 도시에서는 흔하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도시의 사람들은 이 흔치 않은 기쁨을 누리기 위해 조천까지 발걸음을 한다. 덕분에 굽이굽이 들어가야 겨우 찾을 수 있다는 와흘리의 아담한 게스트 하우스나 펜션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게 입실하지 못할 만큼 그 인기가 상당하다고 한다.

제주 조천읍 함덕리 함덕해수욕장

뿐만 아니라, 조천읍 함덕리의 함덕 해수욕장은 매년 여름, 더위를 피하러 내려온 피서객들로 넘쳐나고, 덕분에 이 일대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이나 음식적이 잘되고 있다. 아직 무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계절이지만 일찍이 함덕 해수욕장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아서, 다양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수심이 깊지가 않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에도 좋고, 주변 풍경도 예뻐서 매년 찾아오게 되네요. 여기 함덕 해수욕장 말고도 조천읍 교래리의 돌문화공원이나 (대흘리) 에코랜드도 둘러보러 가고 싶어요."

함덕 해수욕장과 더불어 조천읍의 여러 관광지들을 둘러 볼 계획이라고 전한 이들은 관광지로서의 조천읍을 높게 평가했다.

어느새 조천읍은 제주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마을이 되었지만, 지금이 오기까지 겪었던 과거 모습들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천읍의 작은 리(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 조천읍의 ‘어제’

조천읍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나 도민들은 조천을 그저 ‘평화로운 제주의 마을’로 인식하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조천은 특히나 더 ‘관광의 메카’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발길하지 않는 곳, 참혹한 역사의 아픔이 채 치유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슬픔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 조천읍에 위치해 있다. 그 마을들을 통해 우리는 조천읍의 과거 모습과 당시 사람들의 참담함을 예측이나마 해 볼 수 있다.

조천읍의 과거와 역사를 잘 보여주는 마을 중 하나는 조천읍 북촌리다. 북촌리는 제주시 조천읍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해변마을로, 일제 시대에는 항일 운동가가 많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 됐던 곳이기도 하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 기념관

현재는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위치한 자리로, '북촌리 4.3길'의 시작이다, 이곳의 71여년전 과거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 초등학교 서쪽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마을에 들어온 토벌대가 마을 주민 300여명을 대량 학살하면서, 평화롭기만 했던 마을의 모습은 역사로 사라지게 되었다. 참담한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기념관과 위령탑의 모습, 그리고 이름도, 나이도 모를 어린 아이들의 돌무덤 10여 기가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촌리의 4.3길을 따라 걸으면 더 많은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군인들에 의해 북촌 주민 100여명이 희생된 학살터였던 '당팟'과 토벌대에게 지역 주민들이 총살당한 '서우봉 절벽' 등 조천읍의 과거가 생생히 담긴 북촌리의 4.3 유적지는 있는 그대로 조천읍의 결코 잊어선 안될 역사의 산물이 됐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 4.3성

조천의 과거를 담은 마을이 또 있다. 그곳은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 71년전의 낙선동은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살던, 작지만 웃음이 끊이질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토벌군에 의해 마을은 전소됐고, 1949년 봄,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폐허가 된 선흘리를 재건할 당시, 주민들과 무장대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 통제 하기 위한 전략촌을 조성하며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이다.

넓은 토지 면적 위, 마을과 동떨어져 보이면서도 그 장대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 4.3성의 모습은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것 처럼 보인다.

선흘리 주민들은 1954년 통행제한이 풀리면서 비로소 고향 마을로 돌아가 집을 지어 살았고, 일부는 그냥 성 안에 정착해 오늘날의 낙선동을 이루고 있다. 어쩐지 아직도 슬픔이 낮게 깔려 있는 것만 같은 낙선동의 4.3성 인근은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4.3성에서는 과거여행을 하듯, 조천읍의 71년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북촌리와 선흘리 모두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보다는 다소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았던 선흘리에서 만난 동네 주민은 4.3과 조용한 마을의 분위기에 대한 물음에 짧게 답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4.3은 ‘폭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래서 4.3이 금기어 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그 역사가 있는 여기 마을들까지도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아서 아직도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도 많이 없고...”

실제로 제주 4.3 사건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지난 노무현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고 나서야, ‘폭동’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제주의 아픈 역사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는 문헌이 전해진다.

조천읍의 마을들은 얼마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인구와 분위기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 조천읍의 마을들이 겪은 어제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과거는 또 다른 오늘의 모습을 만들었다.

제주 조천읍 포구

# 조천읍의 ‘내일’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게 될 조천읍의 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관광의 메카일까, 4.3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일까
조천읍 북촌리에서 ‘올드북촌’이라는 카페와 ‘북촌 플레이스’라는 펜션을 운영중인 사장님은 앞으로의 조천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다.

“원래 살던 고향은 애월이었어요. 여기 조천읍 북촌리로 넘어온 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죠. 그래서 조천읍의 내일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것 같아요.”
‘조천’이라는 마을의 미래에 대해 쉽게 얘기를 꺼내는 걸 어려워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장님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사업자이기 이전에 조천읍을 사랑하는 한명의 마을 주민으로서의 마음이 담겨있다.

“개인 사업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천읍 그리고 북촌리를 찾아주시는 관광객이나 도민 분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좋죠. 그렇지만 4.3의 아픔을 가진 마을이라서 관광객들이 지나치게 붐비지 않는 상황도 이해는 돼요. 관광지로서의 발전도 좋지만, 4.3에 대한 아픔이 먼저 치유되고, 역사적 사실과 아픔을 미화없이 잘 전달되는것도 중요한 일인것 같아요.”

조천읍이 나아갈 수 있는 ‘내일’의 모습은 무궁무진하다. 관광의 메카로 성장할 수도,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 가치 장소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점은 ‘각각의 마을의 특색을 살리고 상생하는 일’이다. 좋은 관광지로서의 발판을 막 마련하기 시작한 마을을 저지할 수 없고 아직은 역사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을을 무턱대고 관광지로 개발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김영기 부읍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천읍의 미래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현재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함덕리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많이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교래리의 산굼부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고요. 관광지로서 조천읍이 많이 각광받고 있는 것 같아서 관련 사업이나 지원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비교적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마을들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마을 토론회 등을 통해 꾸준히 논의중에 있습니다."

그는 마을들의 공동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의 다양한 관심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관광지는 아니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마을들도 많은 사람이 찾아주면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북촌리나 선흘리 같은 경우에는 도민들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주4.3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니만큼 우선적으로 도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관광객들은 자연히 많아질 것 같고요, 4.3의 역사와 마을을 엮어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어제'가 없으면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 각각의 특색을 가진 조천읍의 마을들이 상생하고, 조천읍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내일을 만든다면, 조천읍은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은 잃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날 조천읍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2020 신문제작실습 / 강민정>

강민정  journal81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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