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그날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부산에 여행을 갔던 때다. 제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 우리들은 계획에 없던 책방 골목에 우연히 들리게 되었다. 책방 골목은 사람 두 명이 겨우 다닐 정도로 비좁았고 책들은 나 좀 봐달라는 듯이 책방을 비집고 넘어 인도까지 나와 있었다. 이전부터 글 읽는 걸 좋아했던 나는 이렇게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 책에 둘러싸인 느낌이 너무 좋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골목을 거닐고 있을 때쯤 어느 책방 사장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책들을 보여주면서 책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는데 말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나도 모르게 7권이 세트인 책을 사버렸다. 후에 공항으로 향하면서 한껏 무거워진 가방 덕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책을 읽을 생각에 들떠 날아갈 거 같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늘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길 좋아했던 것 같다. 누군가 같은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고는 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늘 엄마였다. 엄마는 책을 좋아했고 자주 도서관이랑 서점에 같이 가 책을 보기도 했다. 아빠와 동생은 책, 글이라면 질색할 정도로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엄마랑 나뿐이었다. 책을 읽을 때 장르는 딱히 가리지 않았다. 자기계발서, 시집, 추리소설 혹은 베스트셀러,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다면 읽고 엄마한테 달려가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앞서 책방골목에서 산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책들은 엄마 취향이 아니었는지 안 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부려 1권만이라도 읽어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읽으셨다. 나중에는 계속 찾아와 마지막 권을 가져갔을 때는 마음속으로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은 책들은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졌다.

 

 이번 출판문화실습에서 가족 독서 릴레이는 내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왠지 이번만큼은 내가 추천해주는 책이 아닌 엄마가 추천해준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읽고 우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골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고른 책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었다. 처음 책의 이름을 접했을 때는 유명한 책이기도 했고, 우리가 엄마한테 말을 섭섭하게 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첫 번째 주자였던 엄마는 책을 고른 기간과 함께 오랜 시간 천천히 읽으셨고 책은 다시 내게 돌아와 경기도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졌다. 두 번째 주자인 동생 역시 처음에는 책 읽기 싫다고 불평했지만, 막상 책을 받고는 빠르게 읽고 다시 보내주었다. 책을 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읽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세 번째 주자인 내게 책이 도착했다.

 

 책을 읽는 동안, 든 생각은 우리 가족에게 대화가 있었는가 였다. 우리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은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할 때마다, 대화할 때마다,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하나하나씩 어긋났던 것 같다. 그리고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서서히 대화가 줄었다. 우리가 그걸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언어의 온도, 언어와 말에는 온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온도는 분명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이된다. 그것이 따뜻하든 차갑든, 분명히 소중하게 여겨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아직 우리 가족은 가족 독서 릴레이의 끝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 주자였던 아빠에게 책을 전달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반드시 이 가족 독서 릴레이를 끝마치려고 한다.

 

<2019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4학년 민수현>

민수현 soda3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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