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같은 책을 돌려보기 위해 제주도에서 서울로 택배를 보냈다. 우리가족의 제주도에서 서울이라는 물리적 거리는 5명의 가족이 책을 다 돌려본 후 한마음으로 좁혀졌다.

 

“올해 추석은 꼭 갈게요” 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올 추석에 맞춰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할머니 댁인 경남 합천에 가기위해 우리 가족은 이른 새벽 눈곱도 때지 않은 채 차에 올랐다. 이번 추석은 나와 아빠가 운전을 교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인 엄마와 올해 서울에 취직한 제주도 사람인 친척여동생은 뒷자리에 타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평소 시골에 가기위해 운전할 때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조수석에 탄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준다. 먼저 운전대를 잡은 아빠와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1~2시간이 됐을 때 도로가 막히는 상황에 매우 졸려 보였기에 주제를 바꿀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럽게 가족 독서릴레이 얘기를 꺼냈다.

“아빠 이번에 과제 중에 가족 독서릴레이가 있어! 괜찮아?”

“너 과제면 당연히 해야지 어떤 책인데?”

“어... 이제부터 정해야 돼 어떤 책 읽고 싶어?”

“그냥 네가 정해봐 나는 따라갈 테니까”

“그럼 아무거나 정한다?!”

“그래 대신 내가 열심히 읽어줄게 근데 독후감 같은 것도 써야 되나?”

독후감 숙제를 오랜만에 맞이해보는 아빠 목소리는 설렘 반 귀찮음 반이 담겨 있었다.

“근데 네 여동생이랑 남동생은 읽겠냐?”

이번에 따라오지 않은 남동생과 여동생은 독서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는 아빠는 장난조로 걱정했다. 처음으로 아빠와 인생사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가 아닌 책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눠서 인지 뒷자리에 타고 있던 엄마도 흥미가 있는 듯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

“뭐야 나도 해야 되는 거야?”

평소 부모님과 친근하게 지내던 나는 명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독후감도 써야 돼!”

“아 귀찮은데 일 때문에 쓸 수 있으려나...”

뭔가를 기대하는 듯 말끝을 흐리는 엄마였다. 나는 금방 원하는 바를 눈치 채고 능글맞은 어조로 이야기 했다.

“에이 이번 추석 설거지는 내가 다 합니다. 읽어주십시오 김여사님 부탁드립니다.”

그제서야 엄마는 원하는 바를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옆에 있던 제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친척 여동생도 신기 하다 듯이 나에게 물어봤다.

“오빠 무슨 과목인데 그런 과제가 있어? 교양이야?”

“아니 우리 전공과목 중에 출판문화실습이라는 과목인데 헌책도 팔아보고 가족 독서릴레이 독서도 하는 과목이야. 이렇게 가족들 분위기 좋아진 것 보면 교수님이 좋은 기회를 주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이번 릴레이 독서에 대한 기대감을 친척 여동생에게 내비췄다. 이번 추석은 유독 차가 막혀 4~5시간 거리를 거의 10시간 넘어 도착했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대화시간은 충분했다. 여러 주제가 나왔지만 역시 화두는 ‘가족독서릴레이’였다.

 

과제 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3주 정도를 보내고 나에게 맡겨진 책 선정 임무를 하기로 했다. 가족이 쉽게 읽은 만한 책을 고를까? 읽었던 책? 고전? 베스트셀러?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작정 책방에 갔다.

 

헌책판매행사를 위해 자주 갈 헌책방 ‘책밭서점’에 갔다. 이런 저런 책을 보다 민음사에서 나온 빛바랜 세계문학전집이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제목이 익숙한 ‘동물 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홀린 듯 아래쪽에 있는 ‘동물농장’을 낑낑대며 꺼내고 구매를 했다. 가격은 3000원.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그 명성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고 생각 했기에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샀다는 희열감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10월 4일 무작정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역시 명작답게 술술 읽혔지만 조금 조금씩 읽어 10일 정도 걸렸다. 다 읽은 후 과제를 위해 한줄평을 작성하기로 했다. 단 한 줄이지만 5번째 주자까지 잘 가기 위해선 책의 내용도 포함 돼 있어야 하고 내 생각과 함축적 의미가 잘 포함되었으면 하는 부담감에 1시간 동안 고민 후 한줄평을 썼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끊임없이 서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는 한 줄의 글자를 쓰는 시간은 얼마 안 걸리지만 이 생각을 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에 더 소중했다. 문장에 기교를 부리기도 했지만 첫 시작에 이 정도 멋부림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을 다 읽은 후 책값보다 비싼 택배비 3500원을 지불 한 후 서울로 보냈다. 그리고 아빠와 통화했다.

“아빠 책 보냈으니까 4명이 다 읽고 한줄평 써줘!”

다짜고짜 내 말을 시작으로 아빠의

“알았어.”

대답을 들은 후 끊었다.

이미 추석 때 독서릴레이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으니 나머지는 아빠에게 부탁한다는 마음이 었다.

중간 중간 카톡으로 “했어?”라는 메시지에 “하고있어”라는 답만 들었다. 몇 번째 주자인지만 확인하고 간섭하진 않았다. 그러나 가족의 과제라는 사명감 때문인지 가족들이 부지런하게 책을 읽어 주어 마지막 주자까지 다 읽은 후 11월 25일 책을 받을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서울, 서울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이 책을 다시 만난 후 한줄평을 확인해 보았다.

책을 읽은 후 가족들의 한줄서평, 5인가족 모두가 참여했다.

아빠 “내가 만들고 싶은 우리가족의 모습이 이상적이라 생각했지만 돼지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세상에 타협하게 되지는 않았나 되돌아 보았다.”

엄마 “결국 똑같이 되풀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여동생 “동물들을 의인화 해 기득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한 조지오웰에게 큰 박수를 주고 싶다. 시대를 잘 담은 책이다.”

남동생 “행복하고 완벽한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내 예상보다 고급스런 답변들에 깜짝 놀랐다. 특히 부모님의 한줄평은 평소 문장이 이렇게 깊었고 문학적인 분이셨다는 생각에 존경심까지 들었다. 부모님의 글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고 특히 문학적인 소설 얘기를 처음 해보는 어색함에 그런 마음이 들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장난투를 싹 지우고 진지한 말투로 통화했다.

그러자 엄마가

“아들덕분에 문학소녀가 된 기분이더라. 고마워”

라고 대답해주었다. 뭔지 모를 뭉클한 감정이 내 온몸을 감쌌다. 이 기분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빠, 여동생, 남동생 순으로 전화를 했다. 내 과제를 열심히 해 주었고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준 가족에게 평소와 다른 말투로 감사함을 전했다.

 

전화를 마친 후 10분 동안 생각에 잠겼다. 한 달에 2~3권의 책을 읽지만 누군가와 같은 책을 공유한다는 재미와 그 공유 대상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점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 같은 책 공유,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가족과 같은 주제를 공유 했다는 점에서 제주도와 서울로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한마음으로 모여 옆에 있다는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가족독서릴레이는 행복함이다.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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