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담스럽게 하다가도 입 밖으로만 뱉어내면 눈물이 나는 단어 ‘엄마’, ‘아빠‘다. 부모 앞에만 서면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 한없이 작아지는 건 왜일까? 당신들이 우리 곁에 아주 오래 있어 줄 거라는 착각 때문에 늘 소극적이었던 건 아닐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드라마가 원작인 책이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내 가슴에 비수를 여러 번 꽂더니 책으로 읽으니 아주 길고 날카로운 칼이 나의 몸 모든 곳을 가르고 간 느낌이었다. 내가 그동안 어른, 부모를 바라볼 때 평면으로만 보고자하고, 다른 각도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그들은 각자만의 과거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는 나의 부모였기 때문에 당신들의 과거를 제대로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을 같이 읽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서로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고르게 됐다.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목적으로 읽으려는 게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서로의 이야기와 생각을 듣고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위해서다.

 나는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방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드라마를 보든 책을 읽든 간에 본인의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하나는 무조건 메모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엄마 ’왜 이제야 엄마가 갖지 못한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일까. 그동안 나는 엄마를 엄마         라는 자리에만 올려놓고 당연한 듯 이용하고 부담스러워하기만 했다. 자식이란 늘 이렇         게 미련스럽다.’

아빠 ‘우리는 다 인생이란 길 위에 서 있는 쓸쓸한 방랑자라고. 그리고 그 길은 되돌아갈 수           있는 길과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두 갈래의 길로 분명히 나뉘어 있다고.’

언니 ‘산 같은 엄마가 끝까지 엄마답게, 바다 같은 엄마가 끝까지 투사처럼 버텨내지 못하고,           참으로 미덥지 않은 자식 앞에서 아이처럼 무너져내렸다.’

 신기했던 게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떤 자식이었나?‘ 라는 걸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좋은 딸, 아들이었다라고 섣불리 말한 사람은 없었다. 생전에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더 오래 있지 못했던 것에 대한 통탄함이 대화 속에서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두 자식은 처음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서툴 수밖에 없다.

 엄마는 책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정아를 보면서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의 가치관에 스며들어 순종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할머니가 보였다고 말했다. 직장 때문에 할머니에게 우리를 떠밀 듯이 맡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정아의 딸들과 다를 것 없었다고. 우리나라에서는 한 여성이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온전한 희생이 있어야 한다. 할머니는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아닐까. 아빠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어깨가 가벼워졌다고 했다. 부모라는 것이 대단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때로는 자식에게도 기댈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언니는 엄마에게 엄마가 있었다니라는 말을 뱉었다. 자신에게도 자식이 생기면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아픔과 설움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대단하다고 했다.

 묵묵히 경청하던 나는 각자의 눈빛에서 단단함을 봤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물론 과정은 다르겠지만 목적은 같을 것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본인의 입장에서만 가족들을 판단하는 것은 초를 양 끝에서 태우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우리 가족은 가족을 주제로 해서 이 책을 바라봤지만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는 우리는 그들의 단면만 보고 판단했다. 나는 그들이 끝없이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다만 지난날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너무도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 부모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미워하지 말자. 그냥 바라봐주자. 원래 가족이라는 것이 애증으로 살아가는 관계가 아닌가.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축복이다. 그러니 지나고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며 가족에게 이 행복을 표현하며 살아가보자.

 ’나도 누구도 결국은 부모들이 걸어간 그 길 위에 놓여 있다는 거다. 전혀 다른 길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부모를 닮고 싶어하는 자식들이 있을 수 있고, 정반대인 자식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방향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출판문화론 2018 / 강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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