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베어>표지

어릴 적 나는 억지로 독서를 하는 편이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경우보다 누군가가 읽으라고 해서 수동적으로 책을 읽게 된 경우가 훨씬 많았다. 보통 엄마가 책을 시리즈로 구매를 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한 경우도 많이 없었다. 중고등 학생이 되고서도 학교 수행평가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대학교에 와서도 과제로 인해 책을 읽었다. 가족 독서 릴레이 역시 과제로 인해 책을 읽게 된 경우였다. 늘 독서에 대해서는 수동적이었던 나는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족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글이 어려운 책은 나도 읽기 어려울 것 같고 아직 중학생인 동생도 어려워할 것 같았다. 고민을 계속하던 중 중학교 때 책을 구매했던 게 생각이 났다. 중학생 때 내가 책을 구매하고 수업 시간마다 10분씩 책을 읽는 시간이 있었다. 책을 산 목적은 수동적이었지만 내가 서점에서 직접 고른 첫 번째 책이 생각이 났다. 책장에서 그 책을 찾고 맨 앞장을 펼쳐보니 그 당시 책을 구매하고 처음 쓴 글이 있었다. 당시 책을 읽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거의 10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조금의 익숙함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구매하고 읽기전 설렘을 적고 꾸민 맨 앞장

아주 폭력적이고 문제아인 주인공 콜이 있다. 부모도 포기했던 콜이 보호 관찰관인 인디언 가비의 권유로 원형평결심사를 받고 소년원 대신 외딴섬에 가게 된다. 원형평결심사란 인디언 전통재판방식으로 처벌이 아닌 치유가 목적이며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서 1년을 지내면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고 철저하게 고립되어 성찰하면서 결국 자신의 분노를 삭이고 자신을 용서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이다. 콜은 섬을 탈출하려다 실패하고 우연히 만난 스피릿베어에게 폭력적으로 공격한다. 하지만 콜은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 6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다시 가게 된 섬에서 콜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에드윈은 치유의 방법을 가르쳐준다. 먼저 새벽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자연의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는 춤을 추고 조상 바위라는 돌을 들고 산 위에서 굴리고 토템 기둥에 조각을 하는것이다. 콜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콜의 상처를 보듬어준 가비와 에드윈처럼 피해자인 피터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터의 정신적인 상처가 치유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치유를 마무리한다. 결국 피터도 콜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된다.

잘못을 처벌하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해 자신을 용서하는 방법으로 자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용서한 문제아 콜이 변화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살인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폭력과 살인이 꽤 많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신미약이라고, 또 청소년이라고 형량을 줄이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 방법이 도입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읽고 아빠한테 이 책을 권유해 보았다. 아빠는 뉴스를 아주 잘 보는데 아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아빠는 틈이 날 때마다 이 책을 읽었고 마침내 독서를 끝냈다고 나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단순히 ‘재밌다’고만 했다. 아빠의 반응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딸과 책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어 보람찼다고 했다. 곧이어 동생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나이가 중학생 때였고, 지금 중학생인 동생의 생각이 궁금했다. 동생은 고맙게 내신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열심히 읽어주었다. 항상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지만 틈틈이 읽은 것 같다. 동생이 다 읽었다고 나에게 책을 줬을 때 나는 무슨 느낌이 들었냐고 물어봤다. 동생 역시도 재밌었고 누나가 중학생 때 책을 본인도 읽게 될 줄은 몰랐다고 나중에 시간이 많이 생기면 한 번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끝이냐고 되물어보니까 ‘끝’이라고 했다. 아빠와 동생의 느낀 점은 내가 생각한 반응과는 달랐지만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가족과 대화 할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내가 자라면서 아빠와 대화할 기회는 줄었고 점점 사이도 멀어졌다. 하지만 이번기회에 '책'이라는 주제로 부녀가 대화할 기회가 생겨서 마음속으로 조금 기뻤다. 그리고 동생이랑은 친하지만 '책'을 주제로 한 대화는 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동생에게 책을 추천하고 권해보았는데 정말 누나가 된 느낌이었다. 동생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알던 누나와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동생도 이 책을 읽고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앞으로도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책을 읽어보는 습관을 지니고 가족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책을 공유하는 기회를 스스로 많이 만들어 보고 싶다. 일 년에 한 권이라도 시작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의무로 시작한 가족 독서 릴레이가 나중에는 뿌듯함과 서로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서로 바빠서 같이 밥을 먹는 날도 많이 있지 않은데 이렇게라도 서로 대화도 하고 서로의 얼굴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과 대화하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말하기 오그라든다면 책을 추천하고 권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방법도 좋은 것 같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