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독서릴레이 과제를 받고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각자의 일로 바쁠 뿐만 아니라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도청 근처, 아빠는 서귀포, 나는 제주 시청 근처, 동생은 기숙사. 함께 모이는 날이 거의 없으니 내가 읽은 책을 직접 전달하며 진행하기에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다. 평소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괜히 어려운 책을 추천하실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어떤 책을 추천하실지 예측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제목이 들렸다. 아빠는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추천했다.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2018, 가나출판사)

 

  이 책은 지난번 도서관에서 빌려 수업시간에 소개했던 책이었다. SNS에서 꽤 유명하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던 일러스트 작가가 책 표지를 디자인한 책이라 관심이 갔었다.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이 책을 아빠의 추천으로 읽게 되니 기분이 오묘했다. 마치 선생님이 수업 내용과 상관 없는 만화책을 읽으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책 제목을 다시 읽으니 아빠가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아빠는 이미 책을 읽었고 내가 읽을 차례였다.

 

  작가는 제목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을 책에 담았다. 방법은 다양했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는 법부터 부정적인 말에 압도당하지 않는 법까지, 무례한 사람들에게 직접 대처하는 방법 외에도 자신의 마음 근육을 단련하여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도 있었다. 꽤 쏠쏠한 방법들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당당하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가상의 언니와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다. 책에 나온 갖가지 방법들은 이상한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나'로 살아보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향한다. 앞으로 사회에서 당할 갑질이나 무례한 행동들에 우아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책 추천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니 내년 대학교를 진학할 동생에게 잘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을 가족 독서로 추천한 아빠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바쁜 엄마를 대신해 수능이 끝난 고3 동생에게 마지막 바통을 넘겼다. 착하고 둥글둥글 동생이라 꽤 빠르게 읽고 문자로 한 줄 평을 남겼다. '내가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것처럼,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 착한 사람이라는 틀에 끼어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이고 소중한 조언을 주는 책.' 평소 거절을 어려워하는 동생이 느낀 소감이었다. 아빠에게도 이 책을 이미 읽었으니 한 줄 평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쑥스러워하며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신문 기사를 캡처한 사진이었다. '사람에겐 높낮이가 없어야 하는 까닭'이라는 제목과 갑질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한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한 줄 평을 받았다.

 

한라일보 (2018.06)

 

  독서 릴레이를 마치고 나와 동생은 앞으로 사회에서 마주칠 불쾌한 언행에 대해 거절을 보낼 수 있는 팁을 얻었다. 아빠에게는 갑질에 대한 생각과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불쾌한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생각했다는 점은 같았다. 아빠는 가족들이 꼭 터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추천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쉽게 참여하지 못한 엄마의 한 줄 평이 궁금하다. 지금도 사무실 책상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을 엄마에게 이 책을 추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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