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둘이 산 지 서너 달이 되었다.

윤동주 시, 이성표 그림 '소년' (보림)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엄마의 존재를 더 입체적이고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창시절 엄마의 존재는, 강인하고 든든한 존재, 가장이자 내 삶의 든든한 대들보였다. 엄마의 희생과 노력으로 아름답게 피어났던 내 어린 시절은 곧 엄마 본인의 행복을 내 삶의 목표로 설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느끼는 엄마의 모습은 또 다른 점이 많다. 엄마와 뉴스를 보고, 엄마에게 요리를 해주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직접 사줄 수 있게 되고, 여행을 직접 계획하고, 함께 여행을 하며 엄마의 고향을 만나고. 학교와 방구석에서 볼 수 없던 엄마의 모습들이, 참 낯설지만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엄마의 모습은 나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매번 색채를 변화시켜갔다. 성인 여성이 되고 나서야 보이는 엄마의 고충이 보였고, 일례로 명절 땐 엄마와 함께 도망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 만나게 된 상사의 쓴 소리에 서러워 울던 나의 모습을 위로하는 엄마의 모습에선 나와 비슷했던 엄마의 옛 모습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독서릴레이를 마무리하는 오늘, 나는 또 엄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족독서릴레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부터, 엄마에게 이 무서운 사실을 알리기까지 내 마음은 우려로 가득했다. 우선 가족 구성원의 결속력은 차치하더라도, 독서에 대한 관심이 나를 포함해 그리, 그냥, 높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드라마나 영화를 더 즐겨보는 편이다. 엄마에게 책을 건네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어렸을 적 엄마에게 책 선물을 했을 때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종환 작가의 산문집을 생일 선물의 하나로 엄마에게 드렸다가, 며칠 뒤 버릴 책과 함께 묶여져 있는 것을 보곤 충격을 받았던 어린 나는, 그 책은 다시 소중히 내 책장에 꽂아 두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은 앞으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인 지금, 다시 엄마에게 책을 건네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엄마와 외식을 하고 집에 와 쉬던 늦은 저녁, 엄마에게 건넬 책과 한 줄 평 유인물을 무릎에 두고 타이밍을 보다가, 가족신문을 함께 꾸미던 초등 시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과제를 가족과 함께하는 일 자체가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그림책을 건네는 일은 학창시절 성적표를 건네는 일보다 수십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나 엄마의 첫 반응은 질색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국어교육과인 네가 글을 써라, 엄마는 글 쓰는 데 소질이 없어서 ㅡ 예상했던 반응이 있었고, 그래서 읽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책으로 골랐다고, 시민들에게 잠깐이면 된다며 출구 조사를 했던 조사원의 마음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 엄마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하니,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 쓰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대로 정말 소설을 써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무슨 내용인지 한번 읽어나 보자며 엄마는 내가 들고있던 그림책을 가져갔다.

 침대에 앉아 그림책을 정독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생경한 그림이 재미있어 몰래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을 찍으며 누워있었다. 엄마는 읽으며, 시를 그림이랑 같이 넣은 거구나, 좋네, 윤동주 시였구나, 너무 어려운데, 소년이, 순이를 떠올린다는 거구나, 하다가, 벌써 끝났어? 하곤 다 읽어버렸다. 엄마는 괜히 민망해 하면서 나에게 그래서 어떻게 감상평을 말해줘야 하는 거냐며 물었다. 슬프다? 소년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짤막한 엄마의 말을 다시 정리하니, 아니, 그렇게 슬프진 않았어, 라는 단호한 엄마의 말에 동시에 웃었다.

엄마는 딸이 부탁한 졸업이 달린 과제의 한 줄 평에 어떻게 글을 쓸까,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하다가, 가장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일 것이다. 엄마의 그러한 문학적 감수성이 담긴 표현은. 엄마는 윤동주의 시 소년을 읽고 “소년의 마음처럼 내 마음도 파랗게 물들었다.” 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떻게 파랗게 물들었는지, 엄마의 마음 속에도 순이가 있는지, 더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푸른 마음에 물들었다고 말해주는 엄마의 말에 모든 맑은 빛깔에 온통 물드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 엄마와 시에 대한 내 감상과 해석을 나누었다. 문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있어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지만, 엄마와 같은 한 줄 평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엄마의 평소 말투와 어법으로 느낄 수 없던 뉘앙스 때문에 생기는 나의 감정적 격차 때문이겠지만, 때묻지 않은 말간 시와 어울리는 때묻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과제는 핑계이기도 했지만, 부끄러우니 과제임을 강조하고 “엄마, 최고야.”라고 말하며 안방에서 빠져나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가족 독서 릴레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언젠가 엄마와 또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때도 엄마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18 출판 문화론 / 국어교육과 4학년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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