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화를 소설로 옮긴 책입니다.

 

-일어선 채로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방을 옮겼는데 의자가 없어서.

   의사였다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주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들에겐 장래가 촉망받던 장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시집가서 평범하게 사는 둘째딸,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여자와 결혼한 막내아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장남의 기일에 모든 식구가 고향집으로 모이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장남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살아난 아이를 매년 부르는데 막내아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참 별 볼일 없는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저런 자식 살리다가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원통해합니다. 할머니는 매년 불려오는 청년이 불쌍하다고 그만 부르자는 막대아들의 말에 그래서 부르는 거라고 얘기합니다.  

   아들은 살아남은 청년이 더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딸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같은 지붕 아래서 적어도 20여년은 같이 산 사람들인데 모두 생각이 다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종종 깜빡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 간에, 연인 간에, 친구끼리, 타인을 대할 때, 나와 다른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경험, 누구나 있을 겁니다. 초면이든 오래봤든, 가깝든 멀든 말이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무척 얇아서였습니다. 처음 ‘가족독서릴레이’를 들었을 때 이 책이 바로 생각났습니다. 저희 집에서 책 읽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얇으면 그나마 끝까지 읽어줄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집에 얘기할 때는 이런 이유를 댔지만 실은 이 책을 통해 제가 느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같이 살았더라도 모두 생각이 달랐던지 서평이 제각각이었거든요. 저는 이 책에서 아무리 같이 살아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란 점과 모두 다르기에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음에도, 제목처럼 걸어도, 걸어도, 하나가 될 수 없지만 하나로 얽혀있으려는 유대의 욕구를 느꼈습니다. 저는 얽혀있음을 원하는 욕구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들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제게 가족은 어쨌든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가족보다 친구가 제가 생각하는 가족에 더 가까웠습니다. 제가 원한 환경이 아니었고 제가 선택할 수도 없는 구성원들에게, 단지 이 집에서 태어났단 이유로 겪은 일들이 꽤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머리가 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에 아빠가 다시 쓰러지셨는데 그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엔 기억도 오락가락하시고 말도 잘 못하게 되셔서, 계속 말 걸어서 재활해야한다는 엄마의 말로 일주일에 세 번은 전화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한 게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그게 제일 큰 고민이었지만 점차 대화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아빠랑 속마음도 터놓게 됐습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요. 동시에 매일 누나들한테도 오늘 전화했는지 확인전화가 왔는데, 그런 전화가 길어지더니 예전에 비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게 점점 반복되면서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서로 의지하는 유대가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게 꽤 편하더라고요.
 

   아마 저도 누나들도 지금까지 가족이라는 얽힘에서 벗어나 혼자 산 시간이 길어서 더욱 그런 품이 그리웠을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이러니 엄마아빠도 많이 느끼셨을 겁니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 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르더라도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자연스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게 아닐까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곳에는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셨던, 이젠 몸도 잘 못 가누시는 아빠랑 어떻게든 자식들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그 시간들을 버텨낸 엄마가 흰 머리 가득해져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같았던 사건과 시간임에도 서로 다르게 느꼈다는 것을, 다름이 아무 소통 없이 굳어지는 것보다 다름에서 오는 갈등이 훨씬 편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가정은 작은 사회라고 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가 왜 있어야 하는지 배우는 곳이 가정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인과 생각이 달라서 갈등도 생기겠지만, 다르게 받아들이는 점이 바로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린 아무리 걸어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닿을 수 없는 타인들입니다. 한참 걸어 다닌 끝에 알게 된 게 고작 ‘우린 모두 다르다’라면 무척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같이 걸었다는 것과 그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앉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편하게 쉬려고 만든 의자. 의자가 없는 게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네요. 어느 곳을 가든 제가 살던 데는 모두 의자가 있어서 생각도 못하던 건데, 이번에 방을 옮기면서 의자의 소중함은 제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되도록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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