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은 낯선 사람들이다. 서로 옆에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사이다. 그래서 이 과제를 처음 들었을 때 막막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부탁하면 해주실까. 책을 선정하는 건 일 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을 거는 것 자체는 한 달이 걸렸다. 아빠의 방문을 두드리는 게 왜 그렇게 어색하고 힘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가족이라는 단어보단 각자의 단어가 어울리는 사이가 돼 있었다.

 용기를 내 아빠의 방문을 두드렸다. 과제를 부탁하면 해주시지 않을 것 같다는 내 예상은 두 달 동안 바닥에 붙어있는 시집으로 맞출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 조급해진 난 아빠한테 시집이라서 어렵지 않고, 한 마디만 남겨주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드디어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눈이 잘 안 보이고 글도 쓴 지 오래돼서 책을 읽지 못하겠다며 대충 나보고 쓰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이 말을 하려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어쩌면 아빠한테 이 전화는 내가 아빠의 방문을 두드린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방문을 두드리는 게 어색하고 용기를 내야 했던 행동이었다면, 아빠한텐 이 행동이 어색하고 용기를 내야 했던 행동인 것이다.

시집<유에서 유>

 시집 <유에서 유>는 사실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골랐던 책이다. 아빠가 눈이 많이 안 좋은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 이유에 글을 멀리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한 시집으로 정했던 것이고 나름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시집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 이 책으로 선정했다. 근데 막상 이런 말을 들으니 처음엔 섭섭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핑계로 아빠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꿈꿨지만, 바로 거절당한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는 대화를 잘 하지 않아 서로의 마음도 모른 채 오해하기 쉬운 사이가 돼버렸다. 한 마디라도 좋으니 같은 책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교환할 수 있다면 어색해도 억지로라도 대화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 거절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쯤 걸려온 전화 한 통은 내게 다른 방향의 ‘유’를 만들었다. 아빠는 책을 못 읽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했고 내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기에 솔직한 거절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서 또 문제였다. 다음 타자는 언니였는데, 언니가 강원도로 이사를 가버려서 책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어서 가족 독서 릴레이가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의구심 또한 들었다. 아빠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급해져 언니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의외로 언니는 내 부탁에 빨리 응답했고, 따로 책도 구매했다. 그리고 아빠의 얘기를 듣더니 형부에게 부탁도 해줬다. 막막했던 과제의 길이 한 번에 뻥 뚫린 기분이었다.

조카 인증샷

  언니는 시집을 읽고 “헬-조선이라 부를 만큼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렵고 해석하기 힘든 게 아니라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이 책을 읽었다. 무의식적으로 공감대가 생겼고 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책이었다. 흥미로웠고, 재미있게 읽었다.”라고 했다.

 반면에 형부는 “시라는 느낌보다는 말장난, 아재 개그를 보는 느낌이다.”라는 후기를 보내주셨다. 내가 이 시집을 읽어서 좋았던 것만큼 다른 사람도 분명 좋게 느끼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형부의 뼈 때리는 한 줄 평 덕분에 바로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시’는 짧은 문장에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글이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가족과 많이 닮아 있어 이번 과제를 진행하면서 하나하나의 상황을 맞닿을 때, 한 편의 시를 쓰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화를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짧은 문장 속에 진심의 감정을 전하는 사이였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런 사이라는 걸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무의미에 유를 끼얹어 유의미해진 우리는 감정의 흐름 속에 서로에게 다정한 마음을 선물할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번 기회로 각자의 삶 속에서 마냥 멀어졌던' 가족'이라는 단어에 솔직하고 담백한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가족 독서 릴레이는 우리 가족에게 서로의 방문을 한 번 더 두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했다. 처음은 당연히 힘들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은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진심을 담아 빌어본다.

 <2018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이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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