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대하여, 임경선, 한겨레출판, 2015

 한동안 방향을 잃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데 벌써부터 방향을 잃어서야 나는 앞으로 잘 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만’ 못 살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이렇게 불안한 나를 아무나 잡아줬음 했고 이런저런 글을 읽다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책은 곧 내 맘에 들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온 태도들은 곧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삶이 좀 어렵게 돌아간다 싶을 때면 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펴고 문장들을 꼭꼭 읽었다. 그렇게 어느 구절인가는 내 몸 안에 체화시켰고, 또 어느 구절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 와중에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게 되었고 그 때 이 책을 처음 떠올렸다. 이번 연도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이 책을 가까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하고 싶었다. 숙제라서 시도했던 것이 먼저였지만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태도가 궁금했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었으니깐.

 ‘나는 지는 해고 너는 뜨는 해야.’ 부모님은 자신을 과거라 주장하시지만 결국 나는 부모님처럼 늙을 것이다. 예전에 사진 어플리케이션으로 내 20년 후 모습을 봤는데 정확히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런고로 부모님은 내가 될 ‘미래’다. 나는 여느 때처럼 내 ‘미래’에게 물었다. ‘과제로 이런 책을 읽고 좀 코멘트 해달래.’ 처음은 엄마였다. 엄마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부탁한 지 이틀 뒤 바로 ‘다 썼다’며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한 장으로 빼곡히 적은 종이를 나에게 주었다.

엄마는 한 장의 서평을 쓰셨다.

 한 줄짜리 감상문을 한 쪽으로 만든 엄마는 결코 대충 하지 않는다. 가진 것 없이 서울로 상경해 첫 직장을 잡을 때도, 결혼을 한 뒤에도 뭐든지 열심히 했다. 일도 열심히 했고 의례적으로 얼굴 비추는 내 중학교 학급회의에서도 지루한 선생님들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이번 감상문도 열심히 적으셨다.

 엄마는 최근 수영을 배운 경험에 비유하며 운을 떼었다. “한 두 가지 영법만 배운 사람보다 다섯 가지 모두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실제 엄마는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진취적인 어른으로 살았으면 했다. 엄마는 이 작가가 말했던 가치를 '내가'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지 빼곡히 적었다. ‘이 세상에 흔들려도 중심 잡고 인생의 행로를 꿋꿋이 걸어 갈 수 있으리라’ 이 문장으로 엄마는 독후감을 끝냈다. 마치 나에게 히는 말 같았다.

 엄마가 살아온 태도를 얘기할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엄마는 자신의 독후감을 쓰면서도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적었다. 사실 엄마는 엄마역할까지 넘치게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잘 되기를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하는 한 사람이다. 이런 엄마의 ‘성실함’을 보며 나는 가끔씩 묘하게 불안해졌다. 이렇게 따뜻함을 받고 자란 나는 정작 내 자식이나 힘이 되야 할 사람에게 엄마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엄마의 글을 읽었지만 새로운 것은 없었다. 엄마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종이를 받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엄마처럼만 살아도 성공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걸 다 읽으라구?” 친구는 말했다. 내 친구는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련만, 역시 많은 시간은 못 냈다. “아니, 일단 한 챕터를 읽어. 그리고 맘에 들면 계속 읽고.”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친구에겐 이렇게 일일 과제로 제안하는 편이 좋다. 친구는 결국 수락했다. 엄마는 엄마고 친구는 친구였다.

 이 책의 ‘성실함’파트를 읽고 친구는 적었다. ‘긴 시간 동안 잔잔하지만 치열했던 자기반성과 고뇌를 토대로 젊은이에게 조심스럽게 충고해주는 착한 어른을 만난 느낌이다’라며 ‘다만 과거의 성실함이 언제나 오늘의 나에 대한 보증을 서줄 수가 있냐고 묻고 싶다.’는 말로 평을 마쳤다.

 책을 반납한 그 날 저녁, 친구와 연동의 한 중국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책이 그렇게 감명 깊진 않았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만난 지 9년이나 되었지만 서로 다른 점이 많다. 나는 귀가 얇은 반면 친구는 자기만의 견해가 단단하다. 나는 신중한 타입이지만 친구는 일단 저지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같은 점 하나는 일단 확실하다. 귀찮음이 많다는 것. 서로 귀찮아서 대부분을 편히 넘기면서 술자리에서도 '나는 맥주, 너는 소주' 이렇게 각자 편하게 9년을 지내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 작가의 글처럼 자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정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친구는 진짜로 원하는 것들에 대해 심플했다. 돈이 필요하면 재지 않고 바로 돈을 벌었고 공부도 하고 싶으면 바로 했다. 어쩌면 이런 ‘단순함’은 친구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나온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가끔씩 상기한다.

이렇게 가족독서릴레이를 핑계로 엄마와 친구랑 깊은 얘기를 한 번 더 했다. 엄마는 성실하고 따뜻했으며 친구는 단순하고 ‘쿨’했다. 냉탕과 온탕에 한 번씩 들어간 기분인데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맘 속에 살짝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서 이해가 약간은 깊어진 느낌이다.

 사실 이번 경험이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갑자기 내 시야를 확 개통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다. 이를 통해 도수가 살짝 안 맞는 안경을 쓰는 기분이었다. 혹시 이런 문제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대처하나 궁금해서 가족독서릴레이가 끝난 후 책도 다시 읽었지만 책에 그런 답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아직도 헤매고 있다는 것은 답이 밖에 없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젠 내 차례다. 책과 엄마,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완성되지 못한 나의 태도를 갖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일상에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고민하는 답을 얻게 될 땐, 그것은 타인의 몇 줄이 아닌 내 가슴으로 느낀 몇 문장일 것이다. 다만 그 답을 찾는 여정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앞으로도 삶에 대한 얘기를 하며 참고를 하고 또 내가 참고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의 초고를 쓰고 있다. <2017출판문화론/ 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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