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란 무엇인가, 김학원, 휴머니스트, 2009

사실 나는 9살에 이미 1인출판사를 경영했다. 이름은 ‘녹차출판사’. 창간호에 이것저것 기사도 썼고, 엄마가 다니던 회사랑 제휴를 맺었다는 광고까지 야무지게 그렸다. 아무도 봐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진지했다. 그렇게 빈 스케치북을 글과 그림으로 채워가며 무엇인가를 막 썼고, 창간호가 완성될 땐 엄마에게 자랑도 했다.

 창대했던 1호를 끝으로 녹차출판사는 폐간했다. (그 때도 출판시장은 불황이었다.) 그리고 폐간된 지 20년도 넘은 지금, 그 출판사가 어떤 책을 출판했는지 지금의 나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 기억나는 건 당시 9살 신인편집장의 업무가 매우 열정적이었다는 것. 생각하면 참 신기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왜 알아서 출판사를 차리고 들뜬 얼굴로 무엇인가를 막 썼을까? 나의 어린 추억들은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처음부터 상기됐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호기심이었다. 당시 나는 출판사가 궁금했다. 그 와중에 과제 겸 들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딱 마주쳤고, 바로 뽑아 대여했다. 한 번 읽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용이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것이었다.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출판사의 업무를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내용 역시 저자가 직접 깨달은 경험들로 밀도 있게 채워졌다.

 이 책에 따르면 책은 참 긴 호흡을 갖고 만든다. 책의 저자를 섭외하는 시작부터 내용을 구성하고, 검토하고, 교열에서 마케팅까지. 저자는 그 장대한 과정을 지치지 않고 하나씩 가르쳐준다. ‘좋은 제목과 나쁜 제목’, ‘저자를 섭외하는 법’, ‘왜 좋은 책에는 좋은 마케팅이 중요한가?’ 등등… 이런 전문적인 얘기를 일반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편집자의 내공을 느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편집자, 출판마케팅을 지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읽을 것을 강력 추천한다. 이 책에 나온 것을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정말 좋은 편집자가 될 것이다.

 다른 직무의 사람들도 이 책에 나온 것을 실천하며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어느 분야던지 일의 속성은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하고, 타인의 일과 조절하는 것, 매뉴얼을 만들고, 보고하고 기획하는 것. 대상은 달라도 일의 핵심은 어느 분야에서나 같다. 특히 책은 기본적인 제조업 중 하나인데, 여기서 나온 과정들과 팁은 결코 특수하지 않다. 예를 들어, 저자에게 다가가는 법은 그대로 직장 내외의 여러 대상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책 기획의 기준을 보면 기획하는 업무의 기준을 볼 수 있으며 매력적인 카피를 쓰는 법과 마케팅 하는 방법 역시 이 책에 나온다. 이렇게 뛰어난 부분을 보면 그 부분이 전체를 조망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좋은 업무 서적 읽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려는 순간, 갑자기 9살 추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저자의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출판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출판만이 나의 구원이라는 등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할 법한 느끼한 소리는 일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그 속에는 책에 대한 사랑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왔다. 그런 마음이 내게 와서 어린 날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었다.

 맞다. 출판은 기쁨이다. 저자는 분명 이 책을 쓸 때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 애정을 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공유했다. 사실 이 편집자가 느끼는 기쁨은 이전의 책을 만든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일 것이다. 자신이 출판한 책들의 반응들을 볼 때 그 짜릿함. 사람을 깨우는 영감을 담고야 말겠다는 열정은 수많은 문인들과 세상의 종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9살의 나는 스케치북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 기쁨은 편집자, 작가들만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책과는 무관한 인터넷 시대라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출판인이 되었다. 이번 학기만 해도 대학생들은 리포트와 PPT를 작성하고, SNS에 자신의 생각이나 유머 글을 쉴 새 없이 쓰니 말이다. 요즘 e출판이 얘기되는 시점에 이런 사소하고 작은 글 역시 출판이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조별과제 PPT를 괴로운 마음으로 꾸역꾸역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박스위치를 이리저리 옮긴 적이 있다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글 혹은 결과물을 보여준 후 ‘오 잘 썼다’ 이 칭찬 한마디가 당신을 종일 춤추게 만들었던 적이.

 나는 확신한다. 당신이 J.K.롤링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작성하며 당신만의 고양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이상하지만 인간이라면 가지는 욕구 중 하나니깐. 만약 당신이 나처럼 그 희열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말하는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2017 출판문화론/ 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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