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런 애를 낳았을까요. 그 애를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보고 있으면 놀랍고 신기하고 잠든 그 애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우리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일까. ‘딸’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는 책 속의 엄마. 나도 우리 엄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하는 딸일까?

민음사. 김혜진 『딸에 대하여』


  가족 독서릴레이에 어떤 책을 읽고 서평을 쓸까 고민하던 중에 시간 때울 겸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딸에 대하여』 라는 제목의 책은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여자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책의 표지 또한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었다.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딱히 그 책을 사려는 마음은 없었으나 정말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책의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분량을 읽을 만큼 나에게는 이 책이 흥미로웠고 가독성도 괜찮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대답은 항상 엄마였던 것 같다. 동생이랑 나는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시는 엄마, 아빠 때문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화장을 하면서 출근준비를 하는데 옆에 꼭 붙어서 “엄마 오늘도 일하러 가? 아니지? 안 갈거지?” 라고 물어보면 엄마는 “응 오늘은 안가”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 그대로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진짜지? 진짜 아니지?”하고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셨다. 엄마가 출근할 때면 할머니는 내 관심을 끌고 그 사이에 엄마는 현관문을 나서서 출근해버렸다. 그러면 나는 마치 이 순간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못 보는 것처럼 울곤 했다. 그렇게 아침에 한바탕하면 나랑 동생도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항상 집에 오면 할머니랑 밥 먹고, TV 보면서 놀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묻는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부모님이 맞벌이였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는 엄마와 함께한 추억들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는 학부모 참관 수업 때 엄마가 오는 게 소원이기도 했다.

  그렇게 초등학생이던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고 이젠 성인이 되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점점 커갈수록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매일 엄마한테 먼저 전화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엄마가 먼저 전화해서 어디냐고 묻곤 한다. 가끔은 그 전화가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애교가 없는 딸이어서 가끔 엄마가 속상해하기도 한다. 무뚝뚝한 맏딸이라서 애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매일 틱틱대는게 일상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용돈주고 항상 짜증내도 다 받아주고 그래서 아무에게나 못내는 짜증은 엄마한테는 너무 쉽게 해버렸다. 나는 ‘당연히 나는 엄마 딸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우리엄마라서 나의 그런 짜증도 다 받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그런 안일한 생각이 엄마한테 상처가 되는 줄은 몰랐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엄마와 내 관계를 ‘짝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짝사랑이란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인데 이 관계에서 한쪽은 엄마고 상대편은 해당하는 것은 나였다. 그 말을 하게 된 상황도 내 짜증으로 시작했다. 엄마한테 한 소리를 듣는 중이어서 속으로는 ‘아 짜증나. 이 순간도 빨리 지나갔으면’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짝사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는 기분이었다. 내딴엔 그 말이 충격적이었다. 나도 엄마한테 나름대로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나에게 주는 사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책에서도 화자인 남편도 일찍 여의고 아들 하나 없이 딱 하나 있는 딸을 위해 교사인 직업을 그만두고 교습소 선생님부터 식당일, 유치원 통학 버스 운전, 보험 판매원을 거쳐 요양 보호사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딸을 키워왔다. 그렇게 악착같이 키운 딸이 좋은 직장을 얻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어찌보면 엄마의 남은 인생에서의 최종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딸은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엄마를 떠나버린다. 딸에게 너희 둘은 결혼도,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며 어떻게 둘이 가족이 될 수 있냐고 하지만 딸은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라고 한다. 엄마 같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엄마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연설하는 딸의 맞은편에 서서 비난하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지도 그렇다고 마냥 딸과 그 애를 감싸지도 못한다. 그녀는 동성애자인 딸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해하지 않을 수도 없다.

  우리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엄마 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가진 모든 엄마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4학년이 되면서 엄마랑 취업에 관해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올해 초에도 엄마랑 그런 얘기로 다투다가 2주 동안 말 한마디 안했었다. 현실적으로 해준 조언에 내가 기분이 나빠져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피했었다. 결국에는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했지만 나중에 어쩌다 보게 된 엄마의 일기장을 보고 눈물이 났다. ‘짝사랑’이라는 관계 때문이다. 내 나름 그런 관계를 바꿔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항상 뒤에서 날 응원해주는 나의 원동력 엄마. 책을 읽고 우리엄마가 나를 위해 포기한 것들도 얼마나 많을까. 나에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라는 책은 나에 대한 엄마의 헌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나와 엄마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 2017 출판문화론/ 국어국문학과 4학년 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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