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시모주 아키코 씀 / 살림 / 13,800원>

우리 가족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다.  주말에 집에 온 아빠를 내가 무섭다고 울기 전까지 우리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주말부부였다. 내가 우는 것을 본 아빠는 회사를 그만 두시고 제주도로 내려 오셨다.

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는 동생과 TV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을 이불 삼아 퇴근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 이였다. TV속에 가족들은 화목했다. 같이 저녁도 먹고 같이 여행도 갔다. 우리와는 달랐다. 12시 무렵 부모님이 오신다. 아빠는 항상 취해있다. 난 술 냄새가 싫었다. 아빠 몸에서 나는 비릿한 생선 냄새도 싫었다. 집안이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멀어졌다.

“부모님 모시고와!” 중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자주 다퉜다. 성적도 하위권으로 학교 내에서는 흔한 말로 문제아였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학교로 와” 늘 하던 대로 용건만 말하고 끊었다. 30여분 후 엄마가 왔다. 일하다 급하게 와서 그런지 복장은 후줄근하고 몸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교무실 안이 생선 비린내와 함께 나의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정말 부끄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쪽팔린다고 말했다.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멀어졌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 사업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흔한 학원도 못 다니고 용돈도 받지를 못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다툼이 잦아졌다. 빈 술병도 늘어만 갔다. 술 냄새가 무서워졌다. 집 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멀어졌다.

군 생활 하고 있었을 때, 부모님이 반평생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휴가 나온 날, 그날이 마침 제사였다. 집에 와보니 친척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빠는 없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아빠였다. 집 앞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나가보니 아빠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빠에게 경례를 하니 말없이 안아 주셨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몸에서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 비릿한 냄새까지 났다. 싫지 않았다. 나도 꼭 안아 주었다. 그러곤 다시 어디론가 가셨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빠의 마음을 이해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멀어졌지만 가까워졌다.

시간이 지나 생활도 나아지고 현재는 가족 모두 전보다는 가깝게 지내고 있다. 같이 저녁을 먹고 TV도 보면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번에 가족 독서 릴레이에 대해 말했다. 아빠는 안 한다며 딱 잘라 말했다. 사실 27년 살면서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쉽지만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하기로 했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갔다. 나는 이왕 하는 거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우리 가족이 더욱 아끼고 서로 사랑하고 돈독해 질 수 있는 그런 오그라드는 주제를 원했다. ‘가족이라는 병’ 제목이 확 끌렸다. 어렸을 때 나에게 가족은 정말 병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 감정 없이 내 몸에 살고 있는 병처럼 나와 다투고 있는 그저 또 다른 사람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첫 번째 주자인 내가 책을 다 읽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 주자는 먼저 집에 들어오는 사람으로 정했다. 동생이 먼저 들어왔다. “아 이거 그때 말한 거 하는 거 ? 읽고 엄마한테 주면 되는 거지 ?” 웬일로 적극적이다. 오히려 이런 모습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읽어” 라고 말하고 건네주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 읽었냐고 물어봤다.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단다. 빨리 읽으라고 말했다. 3일 뒤 책은 다시 나에게로 왔다. 뒷장을 펼쳐보았다. ‘왜 가족이 병이라는 거지 ?’ 라고 적혀있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했어도 동생에게는 나쁜 경험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동생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괜히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두 번째 주자인 엄마에게 책을 건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독서량이 많은 엄마는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었다. ‘가족이란 단어는 참 이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다.’ 엄마는 가족이니깐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셨다. 우리가 힘들 때도 가족이니깐 함께 하는 거야. 기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하지만 엄마는 틀렸다. 엄마는 우리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셨으면 정작 당신은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모르실거다. 아셨다면 이런 감상평을 쓰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마에게 가족은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였다.

릴레이를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아빠에게 슬쩍 물어봤다. “아빠, 아빠도 책읽어봐.”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아빠에게 가족은 미안한 존재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아빠한테 가족은 무슨 존재?” “가족? 내가 끝까지 지켜야하는 존재지게” 멋쩍으신 듯 애꿎은 반찬만 뒤적거리셨다. 우리 가족이 책 한권을 가지고 이런 대화를 나눌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이번 릴레이를 하면서 안 사실인데 아직 우리 가족사진이 없다. 연말에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물론 비용은 부모님이 내는 걸로 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 정말로 가까워졌다. <2017 출판문화론 / 양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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