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개인주의자 선언>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책을 빌리러 들어 간 제주 기적의 도서관에서 우연히 뽑아든 책의 서두는 내 뒤통수를 가격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저자의 적나라한 고백은 짧은 시간 내에 날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정신적 도플갱어가 있다면 이 책의 저자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다. 어렸을 때는 친척들 모이는 명절이 제일 싫었다. 114 상담사가 '사랑합니다 고객님'하길래 반사적으로 질색을 하며 '왜요?' 한 적이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무슨 근거로?'가 떠오른다." 매사 이런 태도지만 혼자 살 수가 없기에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보와 타협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합을 도모한다는 직장 체육 대회나 등산이 내 개인 시간인 주말에 개최되는 것이 치가 떨리게 싫지만 빠지려면 없는 친척을 돌아가시게 만드는 최소한의 성의라도 표시해야 한다. 술 한두 잔도 겨우 먹는 체질이지만 회식 때 돌아가는 잔을 거절하여 흥이 오른 타인들의 주목을 맏는 것은 더 싫기에 일단 받아먹고, 음료수 잔에 뱉는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주당들의 흥이 오르면 장단을 맞춰 취한 척하는 메소드 연기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이 장황한 자기소개는 비단 저자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된다. 나 또한 선언한다. 나 역시도 개인주의자다. 글 한 자 한 자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나와 동일시되는 내용들이었다. 그 많고 많은 도서 중 우연하게 제목이 눈에 들어왔을 뿐인데 영혼의 짝을 만난 것처럼 내게 꼭 맞는 책을 고르게 된 운명이 신기할 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위계질서, 장유유서, 상명하복, 강요된 겸손과 눈치, 곧 죽어도 지키는 체면, 개인이 튀면 욕먹는 집단주의 문화 등을 난 정말로 싫어한다. 그래서 불만도 많았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았더니 돌아오는 건 넌 대체 왜 그러냐는 짜증 섞인 말들이었다. 내가 왜? 내가 뭘 어쨌는데?라고 반박하면서도 머리 위로 먹구름이 잔뜩 껴 우울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족조차도 날 보며 혀를 찼기에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딜 가든 자연스레 섞여들지 못하고 괜히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잘못된 인간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괴로웠다. 이기적이란 말을 몇 번이고 듣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죽도록 공부해서 이민을 가겠다고. 대한민국 제주도 출생, 23년 동안 모국을 나간 본 시간은 단 3일. 토종도 이런 토종이 없는 한국인이 한국 사회와 어울리지 못 해 인터넷을 뒤져 행복 국가 지수 상위 층인 나라,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검색하며 이 나라를 떠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나라에 가 살겠다고 이를 갈며 다짐했었다.

  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타인처럼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라며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말했다. 근대적 의미에서 개인이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모습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라 말한다.

 저자인 현직 문유석 부장판사는 본인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개인들이 '내가 너무 별난 걸까'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거꾸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인이 된다며 경고했다. 따라서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하며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가 최대한 평화로운 협정으로 공동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을 얘기해준다. 한 개인으로써의 사견일 뿐이라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나는 대부분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마 저자와 내가 같은 성향의 사람이라 그랬던 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위안과 안도가 들어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오히려 누군가는 내게 잘 살고 있다며 등을 토닥여주는구나 싶었다. 이 책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진영논리만이 확연한 정치, 과잉된 교육열과 경쟁, 공고한 학벌사회, 서열화된 행복의 기준 같은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통해 구조적으로 바꿔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글이다. 그렇다면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오해받는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한국 사회 구조가 쉽게 바뀔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름을 인정해주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했던 거뿐이다. 난 이상하고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개인의 행복이 집단의 행복이 된다고 믿는 사람일 뿐이라고. 난 이제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 같은 것이라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저 초록색 외계인들이 내 맘에는 안 들더라도 어차피 잠시 머물며 즐겁게 보내야 할 이 술집에서 서로 오해하고 총질하면 내 손해니 잠시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합의가 있어야 술집이 돌아간다."

 우리에겐 톨레랑스가 필요하다. <2017 출판문화론 / 관광개발학과 3학년 이세연>

키워드

#N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