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베스트셀러래. 머리도 식힐 겸 한번 읽어봐.” 친구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하며 말했다. 고맙게 받아들긴 했으나 당시 나는 취업을 준비하던 예민한 취준생이라 이 책을 읽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그 후 3년이 넘게 내 책장 한구석에 처박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다시금 꺼내든 것은 이번 가을이었다. 요 몇 년간을 정신없이 살다가 최근 나는 일을 쉬게 되었는데 그 덕에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한가롭게 의자에 앉아 맛있는 과자와 차를 들며 책을 펼쳤는데 매력 없었던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흥미로웠다. 알란이라는 유쾌하고 용기 있는 노인의 한평생을 근현대사와 더불어 써내려간 이 책은 술술 잘 읽혀지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의 익살스러운 표현에는 밑줄을 긋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루에 얼마 씩 며칠에 걸쳐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참 세상 쉽게 사는 할아버지네.’였다.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알란 할아버지는 기똥차게 살아남았고 우연인 듯 우연아니게 손을 대는 일마다 잭팟이 터졌다. 물론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대체적인 결과물이 그러했는데 흡사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꽤 길다면 긴 이 소설 속에서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내용은 알란 할아버지가 모든 골치 아픈일은 ‘술’과 ‘대화’로 풀 수 있다는 말을 한 대목이었다. 그것은 참 맞는 말이다 싶었다. 타인과 ‘술’을 마시는 행위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방법으로 밥 다음에 술을 많이 써먹는다. 일종의 사람 마음 무장해제법이랄까?

  알란 할아버지의 문제해결법(술과 대화)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고 싶어지는 해답이었다. 북핵 문제, 사드, 독도, 지역갈등, 보수vs진보, 각종 국제 문제 등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속을 다 보여주면서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코와 볼이 빨개진 채 술잔을 나누며 얘기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알란 할아버지는 폭탄제조 기술자였다. 나는 폭탄이라는 것을 폭력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런 할아버지가 문제는 사실 술과 대화로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그 직업을 가진 할아버지 말이기에 더 와 닿았다. 나는 평소 수많은 갈등을 결국 폭력으로 해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참 미개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진화된 동물이라고 뽐내는 인간이, 가장 진보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말’이라는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 언제나 최후의 문제해결 수단으로 써왔던 것은 제일 본능적이고 저급한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폭력의 정점인 ‘핵’을 보유한 국가라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가볍게 연휴를 보내기 위해 꺼내 들었던 책이었는데 어쩐지 마음은 더 무거워진 채 책을 덮었다. 휴- 하는 가벼운 한숨도 나왔다. 나 혼자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니 너무 심각한 쪽으로 빠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전체적인 책의 내용은 유쾌했으니 걱정 말고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알란 할아버지의 말을 빌려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이고 싶다. “어떤 갈등이 있어 괴롭다면 술과 대화로 풀어보세요.”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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