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멸감>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얻는 상처는 자신과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손상의 정도가 크다.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 회복될 수도 있지만 영구적 흉터로 남아 자국이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내 경우는? 글쎄. 시간을 타고 오며 자연스레 아물게 된 줄 알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새빨간 생채기가 선명해지고는 한다. 책에서는 이런 상태를 "감정의 찌꺼기"라고 표현한다.

  쌓여있는 감정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깝고 내게 아주 소중한 가족과 주고받은 감정은 더더욱. 우리 집은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예전부터 흔들렸다 세워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봤을 때 영원한 안정과 행복은 이 시대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를 피를 나눈 관계라도 개개인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그에 따른 행동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가정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을 가고 친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면서 방대한 영향을 받고 무의식으로 체화된다. 그렇게 한 사람마다 개성 있는 자아가 생긴다. 엄마, 아빠, 오빠, 나로 이루어진 4인 가정은 그 경계선이 뚜렷했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별거 아닌 일에도 큰 싸움으로 번지고는 했다. 누가누가 상대에게 더 모멸을 주느냐 경쟁이라도 하듯이 독하게 할퀴었다. 밤낮 가리지 않는 혈전에 집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단단하고 큰 집인 줄 알았는데 나무뿌리가 갈라지듯 사방으로 금이 가더라.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봤을 때의 기분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 못할 만큼 힘들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구성원 모두가 그랬을 거다. 그걸 느끼면서도 좀처럼 안정되지가 않았다. 금이 가다 결국 깨지고 다시 붙여 놓고, 또 깨지고 다시 붙이고. 오랫동안 반복되는 노력과 무력함에 지치면서도 어떻게든 가정을 살리려 애썼던 모두를 생각하면 누구 한 명이라도 마냥 미워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여전히 시끄러운 집 안에서 문을 닫고 방 안에 들어와 가만히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럴까. 우리 집은 왜 자꾸 깨질까. 고등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그냥 다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럴수록 조울이 반복되는 빈도수 높아졌다. 그렇게 나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성인이 됐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변화되는 상황들을 수차례 맞닥뜨리면서 고등학생 때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의 답을 조금씩 서서히 깨우쳐갔다.

  사회에서는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나더라.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와 절망들이 나와 내 주위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내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놓으려는 다짐은 쉽지가 않았다.

 "억눌린 분노가 엉뚱하게 가족이나 지인에게 공격적인 언사로 표출되기도 한다."

  책의 구절이 공감됐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애꿎은 가족에게 풀어버리는 정당하지 못한 행동을 발견하게 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혀 그럴 이유가 없던 엄마가 상처를 입고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동시에 어쩌면 그 시절 우리 집은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어쩌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관계를 방패 삼아 위안을 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이해받지 못한 나 자신을 가족이면 알아주겠지, 가족이라면 보듬어주겠지 생각하고서. 가족 간에도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가 있는 법인데 각자가 받는 스트레스에 못 이겨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책망하기란 쉽지 않다. 겪어보니 알게 됐다. 무얼 하든 쉬운 일은 없고 내 감정조차 조절하기가 어렵다. 머리로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이리저리 지쳐버린 몸은 머리와 다르게 행동한다. 상처를 주고 싶어 주는 가족은 없다. 결국은 서툴렀던 게 문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뭘 잘 모르니 이해관계가 어긋나고 상대를 삐딱하게 보는 것이다.

  <모멸감>은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집었던 책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서로를 대하는 법을 알았으면 했다. 4인 가족 모두가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오빠는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빠는 일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아쉽지만 엄마와 나만 이 독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기억하면 좋을 구절이나 새로 알게 된 어떤 사실, 마음에 와닿는 문단에 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온 마음을 들여 꼼꼼히 읽었다. 엄마와 나는 공통된 구절을 짚었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가족이면서 가족을 제일 이해하지 못했다. 소중한 만큼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 가족 한 명 한 명이 나 자신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해는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결함을 지적하고 꾸지람을 하되 그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해를 한다고 해서 잘못이 잘한 일이 되지는 않는다.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내가 상대를 귀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베이스로 놓고 지적을 해야 한다.

 "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몸으로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줄 때 자신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가족은 소통도 허술했던 것 같다. 각자 할 일과 눈이 가는 일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상대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가족과 있을 때는 마음까지도 가족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부주의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섭섭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가족이기에 더 상처받고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보다 더 마음을 기울여 노력을 해야 한다. 사소함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애정이다.

  엄마, 아빠, 오빠, 나 모두가 나이를 먹으면서 집안은 대체로 안정되게 흘러갔지만 아직도 가끔씩 위태로워지고는 한다. 예전 기억과 맞물려 손발이 차가워지고 머리에 먹구름이 끼지만 아주 잠시다. 냉정하게 한 발 물러서 봤을 때 우리 집의 수많은 싸움은 결국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생긴 일이다. 이제는 다 알게 됐다. 그래서 난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 깨지면 이해심으로 붙이면 되고, 또 깨지면 사랑으로 꼭 붙이면 된다. <2017 출판문화론 / 관광개발학과 3학년 이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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