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벌써 자랐네, 보기 싫으니깐 뽑아야겠어! 미현아, 족집게 가져오렴”

▲ 나는 내 나이가 좋다

  엄마는 자기 전 나를 불러 “앞쪽에 보이는 흰머리 뽑아야 되겠지?”라고 나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생겼던 것인지,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에서 흰머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흰머리가 보여도 괜찮다고 뽑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흰머리가 보이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말하며 족집게를 건넸다. 나는 족집게를 들어 듬성듬성 있는 흰머리를 뽑았다. 흰 머리를 뽑으며 문득 엄마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여동생의 수능이었다. 동생은 수능 보기 전 나에게 “언니 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살이다? 앞에 있는 숫자가 달라진다고!”라며 “이제 어른이라니, 너무 신기하고 뭔가 이상한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동생의 말처럼 앞자리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제 동생은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감을 지고 가게 되었다. 겨우 1살 차이가 뭐라고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게 되는 큰 갈림길에 서게 했다.

  엄마의 흰머리와 동생의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이 공통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의 주제를 ‘나이’로 선정하게 되었다. 나는 바로 제주도서관에 가서 ‘나이’와 관련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는 ‘어른의 의무’, ‘나이 드는 법’,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등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그 중 ‘나는 내 나이가 좋다’라는 책이 끌렸다.

  우리나라에서 칭찬을 할 때, 동안이라고 말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안이란 나이가 어린 다는 것의 반증이자 젊음의 상징이다. 동안 선호 현상으로 통해 바라본 사람들은 나이 든다는 것에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거부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 듦에 대해 스스로가 조절 할 수 없는 범위이기에 그러한 것도 있지만, 각각 나이에 따른 사회적 지위라든지 책임이 달라지기에 우리에게 있어 끊임없는 고민을 양산하게 한다. 또한 그에 따른 사회적인 시선들도 기대 혹은 부담으로 작용하게 만들어 나이가 든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나 또한 이러한 이유들로 나이가 드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88세의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나이가 좋다고 말하였다. 저자가 왜 이런 제목을 적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책을 뽑아 바로 도서관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자신의 지난 삶을 이야기하면서 지혜롭게 나이 듦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여유가 글에서도 묻어나 독자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알게 된 저자의 깨달음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내용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가족독서 릴레이를 하기 전 책 앞에 “책을 읽고, 반드시 감상평을 말해주세요”라는 말을 적어 표지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이렇게 한 후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책 읽기 싫어하지만 내 부탁을 잘 들어주는 남동생, 아프리카 여행으로 지친 언니 순서로 책을 건넸다. 가족 모두가 읽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바쁜 아빠와 고3 여동생을 어쩔 수 없이 제외하였다. 몇 주 후 가족들의 다양한 감상평을 받을 수 있었다.

  먼저 엄마는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과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상반된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 나이가 좋다와 그냥이라는 생각도 든다. 후회를 하던, 내 나이만큼 살았으니 좋다. 현재도 계속 내 나이는 가고 있으니…”라는 감상평을 보냈다. 다른 또래 친구들 부모님보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대가 높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가고 있다”는 말이, 유독 엄마의 시간만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려왔다.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노년을 마무리하는 그 감정들이 어우러져 있는 엄마의 감성이 내가 딸이어서 그런지 더욱 공감이 갔다.

  엄마의 따스한 감상평과 달리 언니는 다소 냉소적인 감상평으로 온도차가 드러났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현지인들이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사기를 쳤다고 말했다. 유니세프와 같은 구호단체 광고를 볼 때면,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순박한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미디어의 허상을 믿어서 뒤통수를 많이 맞았다고 하였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라면 연륜에서 묻어난 지혜로운 조언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납치범들을 소개해 주는 등 지혜롭지 못한 면모들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저 나이가 든다고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의 반증인 듯싶다는 말을 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분들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끝으로 남동생은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이 책의 글쓴이는 노인이 돼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나는 꿈을 가지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에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게임 좋아하는 그 나이 또래의 고등학생이라고만 알고 있던 동생이 철든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어려운 다짐을 제법 표현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

  가끔 언니와 대화 주제로 나는 이때가 좋았는데 라고 할 때가 있다. 이야기를 하며 특정 나이와 관련된 추억을 소환한다. 현재 나이에 대한 불만과 과거 시절에 대한 그리움, 미래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혼재 되어 있는 대화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나이는 처음 겪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도 아빠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55년생, 59년생, 93년생, 96년생, 99년생, 01년생” 우리 모두는 다른 나이지만 같은 시간의 축을 걸어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나아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3학년 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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