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다산책방. 2009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한 적이 있다. 하얀 페이지 한 가운데 ‘홀로서기’라고 시작되는 시의 어느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엄마가 17살이 되던 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올라와 독립을 시작했다. 그 시절 엄마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보냈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외로운 시간들을 ‘홀로서기’라는 글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가며 버텨냈을 젊은 날의 엄마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엄마와 자주 부딪혔다. 첫째인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는 매우 컸을 것이다. 한창 뛰어 놀기 좋아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는 내게 엄격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동네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날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다. 서러운 마음에 집을 뛰쳐나와 난생 처음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한참을 우는 날 달래 주었다. 엄마가 걱정할 것이라며 전화라도 남기라는 말씀에 엄마와 통화하는 것으로 나의 첫 가출(?)은 몇 시간 만에 끝이 났다.

  딸 둘인 집에서 아빠는 나와 내 여동생을 ‘큰 공주’와 ‘작은 공주’라고 부른다. 내가 스물 셋의 나이로 훌쩍 자라버린 지금에도 말이다. 공주처럼 자라길 바라던 우리 아빠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좋게 말하자면 씩씩하게, 달리 표현하자면 조금 험하게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밀어 넘어지는 바람에 한 달 동안이나 팔목에 깁스를 했었다. 방과 후 엄마 몰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 놀아 흙투성이인 몰골로 집에 돌아온 일은 비일비재 했으며, 과격하게 놀다 가방이 찢어지는 바람에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친구네 부모님이 가방을 수선해 주신 적도 있었다. 중학교 때는 엄마에게 심하게 혼이 나다가 벽에 부딪혀 코피가 쏟아진 적도 있다. 이러다가 과다출혈로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났던 것 같다. 바닥에 있던 필통이 빨개져서 버려야 할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그 때 엄마도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어느 책에서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부모가 되는 일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두렵고 서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그래도 엄마니깐 나를 이해해줘야지’라는 생각만 강요했던 건 아닐까.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네 식구는 성격도 취향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함께 나눌 책을 선정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출판문화론 수업의 일부로 ‘책밭서점’이라는 헌책방의 책을 학생들이 골라 그 책들을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떤 책을 골랐는지 궁금해 돌아다니다 보니 ‘덕혜옹주’라는 책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문득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가족독서릴레이 책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나와 엄마, 동생이 모두 한 번씩 읽었던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였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 책을 빌려 온 적이 있다. 표지가 예뻐서인지 동생이 내가 빌려 온 책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뒤 동생이 똑같은 책을 빌려오고, 엄마도 동생이 읽고 난 뒤 이어서 읽었었다.

  이번 독서릴레이를 진행하면서 새로 책을 구입했고,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다음으로는 동생 그리고 엄마 차례로 우리는 ‘덕혜옹주’와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읽고 난 뒤 한줄 평을 부탁했더니 동생은 “옹주라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겪어야 했던 덕혜옹주가 안타깝게 느껴졌다.”라고 얘기했다. 동생과 달리 나는 고종의 딸로 태어나 일본인의 아내로 그리고 딸 정혜의 어머니로서의 덕혜옹주를 바라보았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생이별을 하고, 원치 않은 결혼 생활과 누구보다 사랑했던 딸 정혜와의 불화를 겪은 덕혜가 안타까웠다. 딸의 죽음도 알지 못한 채 조국으로 돌아가는 덕혜를 보며,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답답했다.

  조금만 받아드리고 순응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조국을 위해서는 계속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도, 남편에게 그리고 자식에게는 적이 되지는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모진 소리만 내뱉고 후회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운 사이,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어느 순간에는 가장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족이다. 아마 덕혜의 가정사는 이런 우리 모습의 극단적인 예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스물 셋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홀로서기를 다짐하던 젊은 날의 엄마의 모습은 어땠을까. 혼자 힘든 세월 잘 견뎌냈다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오늘은 엄마 옆에 꼭 붙어 자야겠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고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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