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그란 얼굴에 쌍꺼풀이 없는 눈, 콧대는 높지만 콧망울이 둥글고 넓으며, 얇은 입술을 가졌다. 덕분에 갸름한 얼굴에 예쁘게 쌍꺼풀이 진 큰 눈,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을 가진 사람들을 매번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사실, 나는 아버지와 똑 닮았다. 아버지 동창들은 ‘영호가 영호를 낳았네!’ ‘웃는 게 딱 영호 딸내미네~’ 하고 껄껄 웃으실 정도로, 아버지와 눈부터 체형까지 다 닮았다. 비밀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눈만은 쌍꺼풀이 크게 진 어머니의 눈을 닮게 낳아 줬어야지, 하고 부모님께 징징거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억울하게도 내 동생은 큰 눈과 작고 오똑한 코까지 우리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에. 심지어 걔는 남자인데도 어릴 때부터 나보다 예뻤다.

1 남 1 녀 중 장녀로 태어난 내가 태어난 날, 비가 많이 왔었다고 했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어머니께서는 2kg이 조금 넘는 작은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당시, 어리지 않은 나이에 임신을 하신 어머니께서는 집안 사정상 만삭이 될 때까지 일을 다니셨다. 그래서인지 평균보다 조금 작게 태어난 나를 태어나기 전부터, 또 태어나고 난 후까지 밤새 눈도 잘 못 붙이시며 걱정하셨다고 한다. 혹시라도 잘못 되면 그게 다 당신의 잘못일 것이라 생각하신 거다.

첫째였던 어머니와 막내였던 아버지였기에, 외조부모님께는 첫 손주였고, 친가에서는 막내였던 나는 얼마나 예쁨을 받았는지 모른다. 아직까지 작은 할머니께서는 친조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널 얼마나 예뻐했겠니, 하며 손을 쓰다듬어 주신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친할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군대를 전역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얼굴을 뵌 적도 없는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그리게 된다. 물론 우리 외조부님께서도 나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나는 그 예쁨 받는 게 너무 좋아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댁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 국밥 등을 만들어 주시면서 한바가지씩 덜어 주셨고, 나는 그게 좋아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곤 했다.

그것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을 하셨다. 나는 항상 외할머니 댁에서 놀았고, 어머니는 퇴근 후에 외할머니 댁에서 잠들어 있는 나를 업고 집으로 향하셨다. 가끔 내가 깨어 있었을 때는 손을 잡고 집을 가는 길에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로 그림자 밟기 놀이 같은 것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손재주가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것들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피아노 의자를 직접 만들어 주시기도 했고, 미끄럼틀이나 그네 같은 것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어느 아이들이 안 그랬겠냐만은, 참 사랑 많이 받고 자랐다, 싶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질투가 많은 아이기도 했다.  4살 차이로 태어난 동생 덕분에 이른 나이에 독방을 쓰고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고, 괜히 동생이 미워 깨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귀엽고 애틋하기만 한 동생이지만, 어린 나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애정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었겠지.

<표지> 가면 뒤의 소년, SAM, 톰 홀만 주니어.

  ‘가면 뒤의 소년, SAM’은 출판문화론에서 헌 책을 파는 행사를 할 때 내가 팔겠다고 책밭서점에서 직접 골라온 책이다. 내가 나름대로 야심차게 고른 책들이 팔리지 않자 나는 사비를 털어 내 책 몇 권을 샀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사실 처음 책을 고르고 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의 장르가 미스터리 스릴러일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고 죄책감을 갖게 될 정도로, 이 책은 실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샘이 주인공인 책이다.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는 전혀 아니다. 얼굴에 큰 혹을 달고 태어난 아이 샘이, 조금이라도 그 혹을 없애고 평범한 얼굴이 되고자 수많은 신경외과,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고 수술하고, 몇 번이나 좌절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다.

  책의 페이지 수가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다. 약 300 페이지 정도 되는데, 짧은 책을 골라서 읽자고 했던 부모님께서는 역시나 이 책을 읽기를 싫어하셨다. 심지어 어머니께서는 내가 추석 연휴 동안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음에도 도저히 책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아 아버지에게 순서를 넘겨 버리셨다. 그렇게 책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11월이 되어서야 택배로 돌아왔다.

  부모님께서는 너무 이기적으로 책을 골랐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께서는 스릴러, 추리 같은 소설책을 좋아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직접 시를 쓰고 시집을 추천해 주실 만큼 시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딸이 고심해서 고른 책이라고 읽어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우리 가족 공통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 아팠던 것이 ‘샘이 소망하는 평범한 삶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히 누리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더 예뻐지자고 쌍꺼풀 수술을 고민하고, 화장품을 바르고 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어머니께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책을 읽고 처음 하셨던 말씀이, 너는 이 책을 읽고도 쌍꺼풀 수술이니 뭐니 말이 나오니? 셨다.

  아버지께서는 현재의 샘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고, 나 역시 찾아 보려 애썼으나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아 현재의 샘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 점이 너무 아쉽긴 하다.

  가면 뒤의 소년 샘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당연하게 갖는 평범한 삶을 이렇게나 간절하게 바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얼굴이 조금이나마 보기 좋아지길, 조금이나마 혹이 작아지길, 조금이나마 숨을 쉬기가 편해지길 바라는 아이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조금이나마를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그 용기가, 어지간히 간절해서는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누군가는 내 보통의 삶을 그렇게 절실하게 바라는데, 그 보통의 삶을 너무 헛되이 보내지 말아라. 어머니께서 남기신 그 한 줄 서평을 나는 한참이나 곱씹었다. 샘의 부모님 역시 샘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어머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먼저 했다는 것에 얼이 빠진 느낌이었다. 나는 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어머니는 샘의 부모님에게 감정 이입이 되셨다고 한다. 내가 평균보다 조금 못 미치는 몸무게로 태어났을 때도, 그렇게 걱정이 되었는데 이 아이의 부모님은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곱씹자면,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과 태어나고 난 후, 동생이 태어난 직후까지 어려웠던 집안 사정에도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집안을 이끌어 오셨다. 부른 배를 안고 출퇴근을 하시면서도 쉬는 날에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다. 그 부업은 색종이 포장, 각종 채소 껍질 까기, 전단지 돌리기, 우유 배달 등, 종류를 바꿔가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성격이 비슷하다.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낯간지러운 말은 절대 못하고, 칭찬도 잘 못하는 편이며, 나보다 더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편이시다. 오죽하면 자퇴하겠다는 딸의 문자 메시지에 힘든 일 있니? 같은 다정한 위로의 말이 아닌 ‘오늘 뭐 먹고 싶니’라는 답장을 보내셨을까. 그런 어머니지만, 가끔 어머니께서 그 낯간지러움을 참고 칭찬을 하시거나 애정을 표현하실 때, 나는 터지는 눈물을 간신히 참는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에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엄마와 아빠가 해 준 것이 없는데 이렇게 대견하게 커 줘서 고맙다. 벌써 엄마 아빠보다 나은 딸이 되었구나.’ 당시에는 어머니께 내색하지 못했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만 곱씹으면 울컥하게 된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다정하셨고 개구쟁이셨다. 종종 사랑을 담은 말들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 주시기도 하며, 내가 스치듯 지나가며 ‘아, 부대찌개 먹고 싶다.’ 하는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부대찌개 재료를 동네 마트에서 한아름 사와 직접 만들어 주시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까먹으신 적 없는 아버지다. 책 읽기 과제를 가장 먼저 흔쾌히 읽어 주신 것도 아버지셨고. 얼마 전,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오셨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께서는 “너희들은 딸내미 키우는 맛을 모른다. 얘가 얼마나 예쁜데. 내가 매일 제주도에서 귤 밭 크게 하는 남자 하나 꼬셔서 시집이나 가라고 하는데, 사실 진짜 시집 간다고 하면 못 보낼 것 같다. 이 예쁜 걸 아까워서 어떻게 보내나.” 하고 친구들께 중얼거리셨다. 그리고 육지를 갈 때마다 꼭 공항까지 데리러 오시면서, 우리 딸 손 한 번 잡아 보자, 하고 손을 잡아 주시는데, 그 따뜻하고 거친 손이 얼마나 애틋한지 모른다.

 사실, 이 책 아니었으면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 곱씹어 보지도 않았을 거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느끼면서 살았겠지. 영원히 사랑받고 살 줄 알았을 텐데, 연말이 되어 생각해 보니, 막연하게 우리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이 드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함께 지낼 수 있을까.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옆에 계신 부모님이고, 할머니고 할아버지이신데, 당연하지 않아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귀찮아하지는 않았는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내가 부모님의 심부름을 할 때 툴툴대는 것처럼, 부모님도 내 과제를 같이 해 줘야 하냐며 툴툴거리셨지만 결국 나보다도 더 열심히, 또 몰입해서 읽으셨다. 또 그에 대해 전화를 몇 통에 걸쳐 함께 이야기했고, 동생이 수능이 끝나서 올라오니 더 보고 싶다며 주말에 육지로 올라오라는 말로 통화는 끝맺어졌다. 출판문화론 과제는 끝났지만, 육지에 올라간다면 이 책을 동생에게도 권할 생각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의 소중함도, 그 누구보다 우리를 위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동생과 함께 알고 싶기에.

< 2017 출판문화론 / 관광개발학과 3학년 이수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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