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경 <빽넘버>|들녘|2016-04-22, 사진출처: 알라딘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잘도 모르는 체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지만, 죽음이 언제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올지는 알지 못한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기적적으로 살아난 주인공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등 뒤의 이상한 숫자들을 보기 시작한다. 백넘버로 지칭되는 엷은 녹색의 숫자는 그 사람의 남은 수명이다. 수명이 줄어들 때마다 숫자도 하루하루 줄어든다. 숫자가 1이 되면 초록빛은 점멸하는 붉은색으로 바뀌고 0이 되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된다. 하지만 백넘버는 거울로 비춰보거나 사진을 찍어서 볼 수는 없고 오직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의 백넘버를 보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책 끝을 접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이 페이지는 책을 추천하는데 있어 사람들이 그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든다. 이에 나도 홀린 듯이 도서관에 찾아갔다. 책 한권을 다 읽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중력이 꽝인 나도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어낼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시간을 이동해 과거나 미래로 다녀오는 상상을 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미래의 모습을 미리 알고 싶어 자신의 미래를 점쳐 보기도 한다. 인생에서 가장 불확실한 것은 죽는 때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때를 알고 있으며 적어도 그에겐 모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미래를 보는 것을 괴로워했다.

  나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겪어보지 못했기도 했지만 어쩌면 죽음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생명은 유한하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경험을 떠올렸다. 올해 4월 나는 우리나라도 아닌 뉴질랜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형화물트럭이 내가 타고 있던 작은 승용차를 덮쳤다. 에어백이 다 터졌고 차 옆면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고 내 몸은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그저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 파악이 된 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그것도 타국에서 자식의 죽음을 전해들을 부모님의 마음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선물을 주신 신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영광스러운 날로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만약 주인공처럼 백넘버를 보게 되고 죽음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의 백넘버를 보며 살아간다? 그럼 난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매일 줄어가는 숫자를 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칠 것이다. 또한 인생의 끝을 알면 삶을 살아가는데 재미가 있을 것인가.

  주인공은 자신의 백넘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이라 말한다. 죽을 때까지 무엇이 자신을 그길로 이끄는지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불안해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죽기 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해보고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내 남은 인생을 알게 된다 해도 나는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달라질 것은 없다. 백넘버를 알든 모르든 그저 매순간을 의미 있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들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책 『빽넘버』를 꼭 읽어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박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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